선의

사람과 일

by 노월

그래,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그러했을 거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동의를 이끌어 내고, 동병의 연민이 측은지심을 일으키고, 동정심으로까지 나아가 자발적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믿음이 확신으로 결정된다. 내 기꺼이 거두어 주마하는 자비 같은 기쁨이 현실에서도 똑같을 거란 선의가 시간을 먹고 오용되다 낭패를 보게 된다. 되돌아오는 한마디 ' 누가 그러라고 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요 배반의 독사 같은 말이 심장을 물어뜯는다.


사람을 믿느냐고? 믿지. 사람이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는가. 그러나 사람을 믿는다고 그 사람의 말과 그 사람이 하는 일까지 믿는 거는 다른 얘기지. 흔히들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인데 일이 좀 어설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엮이면 고생이고 속은 거다. 무능에 속이 터지고, 웃는 얼굴에 보기는 좋아도 의욕만 있고 전문성이 떨어지든지 아니면 제삿밥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고 일은 일이지. 일을 일로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격체를 덧씌워 평가하면 일이 안된다. 일을 맡긴 사람이 일의 진행여부를 물어보는데 그의 대답이 ' 저를 못 믿으세요? 어떻게 믿지도 않고 그 일을 제게 맡겼어요? 저를 믿었으니 그 일을 맡긴 거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일을 은폐하고 있음이다. 그 일을 잘하리라 믿었던 거지, 그 일을 하는 당신의 인격을 믿은 건 아니거든. 일의 진척 과정과 진행의 결과를 물었는데 인격을 들고 나온다면, 그는 나를 이용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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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의 생활 자체가 이미 낯선 어려움을 알고 시작했지만 감내할 부분으로 마음을 다잡아도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07은 그럼에도 한 번은 그런 삶을, 해외에서의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투자이민을 오래 고민했고 드디어 온 가족은 비행기를 탄다. 여유자금을 넉넉히 마련해 갔어도 변수가 겹칠 때마다 마음이 쪼들리고 잔고액을 확인할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에 부족하고 불안하다.


07은 운 좋게 가게를 인수하고 오픈 준비를 한다. 일손이 부족하고 이것저것 갖춰야 할 일들이 매일 쌓인다. 그렇게 07이 분주할 때 도움을 준 동향의 젊은이 k. 타국에서 그런 만남은 그의 시름을 나눌 수 있었고, 서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가까워진다. k 입장에서도 간절하고 절실하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이민 생활에 어린 자식들이 커가고 있다. 취업 비자로 들어와 더 이상 비자 연장이 안되고 불법 이민자의 입장에 강제 추방을 당할 수는 없다. k는 전 직장에서 임금 체불이 이뤄져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입장을 사업주가 교묘히 이용했고, 손가락의 절단 사고를 당해도 산재처리가 될 리 없는 피해자였다.


07은 성실한 k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가 보다. 결국 07은 k와 공동의 동업 형식을 취하려 한다. 추방이 되어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을 방법을 강구하고 있음을 눈치챈 k는 더욱 07에게 매달린다. 이번 한 번만 제발 도와달라고. 자신의 처지도 넉넉지 않았지만, 그런 k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해당 주법에 근거한 합리적 영주의 권리는 투자형식의 사업밖에 없어 보였다. 구체적 증거 마련을 위해 07은 k를 공동 투자자라고 신고한다. 이제 k는 취업자에서 투자자로 신분이 바뀐다. 실제 투자금을 07이 내주고 대신 k는 07에게 매월 이자를 쳐서 원금을 갚는 방식으로 합의한다.


07의 배려로 k는 사소한 일은 물론이고 몸 쓰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이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의 성향과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장단점을 파악하며 동업자로서 서로에게 일정 부분을 맡기고 알아서 장사를 하게 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07은 이제는 각자의 삶을 추구해도 될 시간이 주어졌다고 판단한다. k의 가장 취약한 강제 출국의 위험은 오래전에 없어졌다.


07이 k에게 받은 원리금이 매달 갚는 푼돈의 형태로 되면서 07은 목돈으로 모으지 못했다. 자식들의 학비로 생활비로 빠져나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필요한 곳에 썼겠거니. 이젠 성인이 된 자식들은 나름의 생활을 자리 잡았으니, 07은 좀 더 나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려 한다. 그래서 k에게 우리의 동업은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k는 07에게 본인은 아직 여기서 더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한창 클 나이에 돈도 많이 필요하고, 아직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서라고. 07은 k에게 가게를 인수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동업이 아닌 각자의 삶으로 가려면 여기서 가게를 그만두자고 제안한다. 팔고 정리하자고, 아님 인수하든지. 고민을 하던 k가 오히려 버틴다. 그렇게 못한다고. k의 반대에 07은 지금까지의 k가 다르게 보인다.


마음이 떠난 07은 더 이상 가게를 지속할 마음이 없다. 그러고 보니 처음 k를 구제한다고 그의 편의를 봐준다고 급한 상황이었던 탓에 계약서 같은 서류를 남기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k도 사정은 있다. 아직 모아둔 돈이 없어 여기서 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k는 이제 급한 건 07 임을 안다.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07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그나마 한다는 제안이 이 가게를 처분하면 처음 07의 투자금을 돌려주겠다고. 매매가 얼마에 이뤄지든 07의 초기 투자금만 줄 거라는. 처분 시점도 정하지 않는다. 헐값에 내놓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화장실 들고남의 이론은 늘 적용된다. 급하고 초조한 놈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음은 누차의 경험이다. 이견은 좁아지지 않고 07의 마음에 깊은 배신감이 자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07에게 k는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뭘 어찌하라는 것이냐는 듯이 어깨 들썩인다.


자존심 상하는 일도 그렇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흔해빠진 속담이 뼈저리다. 돈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그런 심경이 지속되면서 07은 울화병이 생겨 그의 속을 깊게 병들게 한다. 재수 없게 개똥 밟았거니 생각하기엔 타국 생활에서의 지친 몸과 중년을 넘어버린 나이의 늙음이 주름 속에 고통이 빡빡하게 박힌다. 다시 돌아오기도 힘들고 거기에 머물기도 곤란하다. 이쪽저쪽도 아닌 한단지보의 걸음처럼 후회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병까지 얻었으니 선의가 누구를 위한 선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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