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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2. 2022

한없이 함 없는 2

하늘의 맑고 밝은 기운

한참을 밖을 바라보던 무달 형님은 얘기를 이어간다.

선생님께 그렇게 정성 들여 쓴 책들을 보며 그 아들에게 한의학을 권했지. 이거 참 좋은 일이다. 스스로도 좋지만 남 돕는 일이니 의술을 잘 베풀면 참 좋은 일이다라고 여러 번 아들에게 권했지만, 그 아들은 한의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네. 선생님의 의도와 다르게 그는 다른 삶을 원했던 거지. 그는 공부보다는 사업으로 더 성공하고 싶었는 가봐.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여전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성공이란 것도 잠깐의 기쁨이니, 의술다른 사람의 고통을 구제해줘서 좋은 일이요,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고, 마음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어떻겠냐고 그리 권해도 아들은 자기 길을 가고 싶다며 결국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한 곳이 아닌지라,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아들은 낙담을 하다 결국 몸져눕게 되었고, 나중엔 큰 병에 걸리고 말았어. 선생님의 상심이란 정말..


그런 상황에서도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자식의 고통을 걱정하게 될 수밖에. 구슬리고 달래도 돌아눕기만 하고, 처방을 내어 약을 달여 방에 들이면 ' 밤새 이거 했냐'며 아들은 약을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 선생님께서 이 얘길 하실 때 허허 웃으며 그놈이 그렇게 하데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무달 형님 침을 삼켰다. 그렇게 속 타는 시간이 흐르다 결국 그만 그 아들은 세상을 버렸다. 세상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상황과 있다가 없어진 상황은 다를 수밖에. 돈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특히 사람이 그렇다.

전에 선생님 주변의 친인척들의 궁핍을 보고 땅을 부쳐먹게 했더니, 나중에 그 친족들이 아예 자기들 땅으로 등록했을 때도 섭섭했지만, 앞세운 자식에 대한 상실감은 몇 배의 고통이었다.


석 달을 아예 밖을 나가지도 않고 2층 다락방에 불도 안 켜고 지냈다고 말씀하시더군.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거든 멀리 여행 갔다고 이르라고 사모님께 미리 말해두곤 두문불출이셨다고. 그렇게 세상 싫은 날을 보내다가 논어의 어떤 구절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아마 공자도 먼저 앞세웠던 아들 리鯉에 관한 내용이었나 봐. 그렇게 털고 일어나셨지. 그러나 그게 어찌 잊히기나 했을까? 친구 중에도 비슷한 경우를 당한 이가 그러더라는 거야. '내 그 맘 알지. 내 그 마음 알지'라고.


그 쯤에 선생님도 어느 정도 정리하고 환경도 바꿀 겸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갈 생각을 하셨어. 그렇게 알아보고 있는데, 어느 날 그곳 중심가의 동종업자 수십 명이 선생님을 찾아와 선생님이 도시로 오면 우린 모두 힘들어진다고 한사코 말렸다는 거야. 며칠 후 또 와서는 선생님 나오면 우리 모두 굶어 죽으니 그냥 여기 계시라고. 그래서 그나마 도시의 변두리쯤에 자리하는 걸로 약속을 하고 나서야 그들이 물러났다고 하더군.


그렇게 도시 정착을 하면서 의술을 펼치던 중 선생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구하던 이들이 몇몇 모였다. 강의를 처음 시작하셨는데 그게 참 좋으셨나 봐. 예전 본인의 어려움도 생각나고 해서. 뭐든 궁금한 병명이나 질환을 물어오면, 병리를 설명하고 처방 구성의 요령을 일러주면서 같이 공부하자며 달래던 선생님은 오래지 않아 접으셨어. 원리를 설명하며 마음공부를 하길 원했던 선생님의 의도와 달리 그들은 처방 몇 개를 얻는데 만족하더라는 거야. 어디 아프면 무슨 처방, 무슨 병에는 어떤 약재 하는 식의 공부는 깊이도 없을뿐더러 환자 상태가 바뀌면 아무 소용없는 것인데 대부분 그런 것에 매달릴 뿐이라고. 그리 공부하면 금방은 좋을지 몰라도, 나중 응용이 힘들다고 운용의 묘가 살지 않는다고 일러도, 다들 자기 급한 거 해소하느라 바쁘기만 하고. 그래서 이런 식의 가르침이면 오히려 더 악영향만 끼칠 뿐이니 안 하느니 못하다고. 세상이 점점 경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셨지.


그 와중에도 선생님은 계속 공부를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 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은 삶이었던 거 같아. 깊은 상실감과 실망들이 쌓여 그런지 이번엔 정작 당신이 병에 걸리셨어. 식욕도 없고 기운이 너무 없어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에 갔더니, 검사해보고 바로 입원을 시키더라는 거야. 간경화가 너무 심하다고. 어쩌면 며칠 못 넘길 정도로 심하다고.  문병 온 친구들과 병원장이 나눈 얘기가 문밖에서 들리더라는 거야. ' 저 정도면 힘들다. 아마 지금 보는 게 마지막이라 생각해라'라고. 복수가 차고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선생님은 사모님에게 다른 거는 필요 없이 입술이 마르거든 숟가락으로 입술만 적셔달라고.


몸이 너무나 무겁고, 지하 깊숙이 자꾸만 빨려 들어가며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 바닥 모를 밑으로 몸이 떨어지는게 느껴져. 온통 어두컴컴한 사방에서 아주 약한 불빛이 시계추처럼 왔다가 한참 후에 저리로 쑥 갔다가 해. 꿈 속인지 무의식인지 몰라도 한 가지는 꼭 쥐고 있었어. 내가 정말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난 그 또렷한 기운이라. 기운이 모여 내 몸을 이루고 기운이 흩어져 내가 사라져도 '나'라는 청정광명은 그대로리니. 이 생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생사를 벗어나고 유무를 초월하여 보름달빛처럼 훤한 그 바탕. 그렇게 나를 의식했다. 계속 그놈 놓치지 않으려고 떠올리고 또 떠올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러다 그 왔다 갔다 하 불빛이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더니 나중에 그만 어둠이 사라지데. 마음에서 이제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며칠을 보낸 것 같아. 집사람은 일주일을 그렇게 누워있었다고 하데. 그렇게 눈을 떴는데 화장실을 가고 싶어 부축을 받아 변을 보는데 며칠을 굶었어도 변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어. 그러고 나니 좀 걸을 수 있데. 그런 일이 있었어.


그렇게 생사를 경험한 선생님은 지금껏 본인이 나름 열심이라고 했던 것들에 대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가봐. 너무 열정만 앞선 것 같기도 했고, 배우는 이들도 준비가 안되어있고.  그런 가르침에 대한 생각 나중에 우리를 만나 강의하실 땐 처음 1년간은 처방 얘기는 아예 없으셨던 거지.


하여튼 그렇게 도시에 계시다 또 다른 일이 났다. 사모님이 돌아가셨어. 아프면 치료를 했겠지만, 전혀 예상치도 않게 트럭에 그만. 사모님 몸집이 작았는데, 트럭 운전자가 못보고 그만. 금슬이 좋으셨는데 이제 한의원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큰아들내 근처로 가야지 하고 여기로 오셨지. 그래서 우리와 인연이 드디어 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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