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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4. 2022

한없이 함 없는 3

하늘은 말없는 성인. 성인은 말하는 하늘

아들네로 오신 선생님은 방 한 칸을 사랑방으로 두고 우인들을 맞았다. 전에 살던 친구들도 들르고, 이 도시에 사는 친구의 지인들도 소문을 듣고 가끔 들러 서로 안부를 묻고 왕래를 하는 사이, 이제 한의원도 접은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펼칠 의도를 내비쳤다. 그러나 예전의 방식으로는 그 한계를 느끼셨기에 좀 더 근본적인 접근법을 의도하셨다. 나이 80을 넘긴 선생님은 이제 이것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업으로 생각하신 듯했다.


내놓라 하는 한의사들 목마른 무엇이 있기 마련이었고, 교수직을 하는 사람들도 그 연구 성과에 대한 개념 해석이 필요한 터라, 그들은 선생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선생님과의  대면에서 그들 대단하다고들 수긍을 하면서 그 소식은 주변의 뜻있는 이들에게 모임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꼭 본인이 고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초식만으로도 그 진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라. 일단 불붙기 시작한 들불은 남쪽의 동네에 순식간에 퍼졌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팀이 이뤄지고, 이내 좁은 사랑방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더 이상 앉아 들을 수 없는 학생들로 복잡다. 주변 도시의 더 많은 이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었다. 선생님에게서 먼저 가르침을 받은 선발대는 이쯤에 선생님의 연로하심을 이유로 수강 인원을 제한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마치 비법 전수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더하여, 배우려는 학생들을 더 많이 모이게 했다. 방 문 밖에까지 인원이 넘치기도 했고, 나중에 들른 이들은 앞서 이미 진도가 나간 선발대를 대상으로 하는 선생님 강의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후발팀은 선생님에게 팀을 나눠주실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선후발팀을 나누기로 허락을 하신 선생님은 간곡히 부탁을 하신다. 먼저 배웠다고 앞서가는 것도 아니니 선배질 하지 말고, 나중 온 이들은 부지런해 따라 배워 서로서로 토론을 하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후발팀에 합류한 무달형님은 처음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배우겠다는 젊은 한의사들에게 선생님은 먼저 허리를 숙이시고, 한 명 한 명씩 소상히 질문을 하면서 예대를 하시니, 그 엄숙하고 자상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고. 그렇게 시작된 수업에서 선생님을 자벌레를 언급하신다. 자벌레가 굽혔다 폈다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벌레가 굽힘은 펴려고 굽히고, 자벌레가 쭉 뻗어 폄은 굽히려고 펴는 거라고. 그냥 폈다 접었다의 반복이 아니라 굽히려고 펴는 것이요, 펴려고 굽히는 것이라고. 음양이 그렇고 기혈의 순환이 그렇다고. 선생님 그렇게 음양에 대한 얘기를 계속 이어가고, 나중에는 우리의 감정까지 음양으로 나눠 설명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화나고 기쁜 감정은 들뜨게 하고 욱하게 하여 기운을 위로 오르게 하고, 슬프거나 섭섭한 감정은 기운을 아래로 쳐지게 한다. 고민이나 생각이 많은 건 기운이 골똘히 하게 되어 중앙에 뭉치고. 이런 감정에도 기운의 움직임에 따라 음양으로 나뉠 수 있겠다. 그러한 기운의 움직임이 위쪽으로 많으면 위에,  아래쪽으로 기운이 쏠리면 아래쪽에 관련 증상을 만들어내거든. 그렇게 음양을 넓게 봐서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여러 궁리를 해보게들.


후발팀은 공부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렇게 와닿게 음양을 설명하는 선생님에 모두 감사의 마음과 열심히 공부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그 후로도 선생님의 한의학의 원리에 대한 설명은 몇 번에 걸쳐 계속 이어진다. 질병의 치료나 처방은 이 원리의 이해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들 마음속 뭔가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늘 기본을 그 바탕을 강조하셨다. 가장 기본적인 음양오행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은 기존의 배웠던 알고 있던 암기식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음양에 이어 오행과 육기에 대한 설명의 놀라움은 어쩌면 우리 내부에서 아직도 여전히 그 진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오행의 상생상극을 봐도 도끼로 나무를 벤다(금극목), 물로 불을 끈다(수극화)하는 식의 물체로 유형체로 설명을 하는 것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다. 오행이 다섯 가지의 활동하는 기운인데도 눈에 보이게 쉽게 설명하려 도식화한다는 게 자칫 고착화시킨 게지. 그전에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먼저 관찰되었고, 그 사시의 기운 활동이 생장 수장의 모습 그대로였을 테고, 그 생장生長의 양과 수장收藏의 음이 끊임없이 순환하며 상호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관찰하여 오행의 승달, 염상, 유습, 조한, 윤하의 다섯 기운을 보고 오행이 나오지 않았겠나. 그렇게 오르내리는 기운 속에서 자연히 바람이 불고 차가워지고 뜨거워지고 습하기도 하고 건조하기도 한 여섯 가지의 육기六氣가 저절로 연하여 발생하겠다.


무달형님은 선생님의 강의 모습과 그 목소리가 그리운가 보다. 이제 그분을 다시 뵐 수도 없고,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더 보고 싶다고. 이제 나도 이만큼 컸다고 말하면 칭찬하시려나? 아님 뭐라고 또 하실지? 선생님은 강의 말미에 꼭 스스로 주인공이 될 것과 마음공부를 당부하셨네. 학생들 중 그 당부가 그저 당부로 끝나는 일들이 몇 있기도 했지.


담벗, 음 시작할 때 기대하는  뭔지, 어느  정도를 원하는지, 어떤 마음자세로 시작하는지가 나중의 갈림길에서 기준이 될 수도 있다네. 그래서 눈치가 빠른 이들은 이 공부가 시간이 오래 필요하다는 걸 알고 미리 어느 정도에서 알만큼 알게 되면 그만둘 거라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우리가 장님인 이상 코끼리 전체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딴생각이 들어도 이 공부가 좋아 양다리 걸치기 하는 이도 있고,  오래 붙들고 있질 못하기도 하고, 도중에 포기하기도 하고, 가끔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여 믿어버리기도 하지. 만큼 멀리 크게 보는 이가 드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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