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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6. 2022

한없이 함 없는 4

物之不齊 物之情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자연스럽다'는 말과 같다. 상황이든 결과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한 날 한 시에 심은 감자알의 크기가 다른  게 그렇고, 한 선생님 밑에서 배운 학생들의 받아들임이 그렇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든 어쩔 수 없다.


천지자연의 순환을 따라 음양을 연구하고, 그 운행의 기운이 우리 인체에도 똑같이 적용되니, 그렇게 한다면 저절로 여전할 텐데, 우린 욕심을 내고 애를 쓰며 억지로 하려 하니 병이 난다. 그 온전한 덕을 간직하여 끊임없이 그치지 않면 병은 없으리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담담하게 유지하며, 잡념을 없애고 텅 비우기를 자꾸자꾸 하면 무슨 병이 오겠나? 선생님은 틈만 나면 이런 말씀을 하셨지.


밝은 하늘이 훤하게 온 세상을 비추어 산천초목 남녀노소 구분 없이 베푸니 무슨 근심 걱정이 있겠나? 군화의 온기가 상화의 작용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뻗어나가 손발 끝까지 전달하니 그 과정이 주역의 이치와도 상통함이라. 수승화강으로 환주불휴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인체의 생기요 살아있는 이치인데, 그렇지 못한 게 병리요, 그 과정에서 무슨 잘못인지 살펴보는 게 진단이니, 그 판단에 근거하여 처방을 구성하면 병은 낫지 않을까?


요즘 세상살이 너무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거나 세세한 득실 계산으로 사람들이 바쁘고 조급 해지는 탓에 갖가지 병에 시달리는 게 안타깝다고. 그렇게 생리, 병리, 진단, 처방을 한 줄로 꿰어보는 공부가 이어지면서 점점 학생들은 점점 나름의 관觀을 세워 나갔다.


그러나, 선생님의 간곡한 가르침에도 막상 배우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경험과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또는 선생님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으로 현실적 한계를 벗지 못하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무달형님은 선후발팀에서 거의 동시에 비슷한 일이 있었던 예를 든다.


한쪽에서는 환자에 대한 임상례를 보고하며 처방을 구성한 학생에게 선생님은 처방의 구성 배경을 묻고 나서는, 그 학생에게 몇 가지 약재를 다른 약으로 바꿔 다시 작방을 해보라고 권했다. 다음의 모임에서 선생님은 앞서 이른 대로 처방했느냐고 어뗐냐고 물으니 그 학생은 자기가 쓴 그대로 처방을 했단다. 왜 이른 대로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그래도 학생은 자기가 봤을 땐 납득이 가지 않았고, 선생님이 직접 환자를 보지 않았고, 책임 본인에 있으니, 본인이 쓴 그대로 치료했단다. 그래서 나았냐는 재차 물음에 아직 크게 차도가 없었다고 하니 선생님은 바꿔서 다시 처방해보라 권했다. 다음 모임에서 다시 선생님은 묻고 그 학생은 여전히 본인 생각으로 처방을 했다고 했다. 선생님은 왜 바꾼 처방으로 써보지 않느냐고 다음엔 꼭 이른 대로 처방을 해보라고 재차 권한 후에 그 학생은 다음 모임에서 환자가 많이 좋아졌다고 인정했다.


또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습관성 유산으로 고생하는 환자였는데, 학생은 선생님께 처방을 여쭙고 그대로 처방을 했다. 임신이 마침 되었고, 학생은 다시 선생님에게 처방을 받았다. 선생님은 처방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꼭 이대로 하기보다 그 사람에 맞춰 구성하라고 일렀는데 그 학생은 선생님에게 받은 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처방을 했다가 그만 다시 유산이 되어버렸다. 이에 그 환자 측에서 섭섭함을 항의하러 선생님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처방을 내는데 그 연유가 뚜렷해야 작방이 가능하고 발전이 있다고 하신다. 또 그러한 이유로 치료가 잘되었다면 본인의 진단을 확인하는 것이요, 혹 틀려도 왜 그런지를 궁구하여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된다고 이르셨다. 무달형님은 이 공부는 결국 본인이 해야 함을 특히 강조했다. 나는 무달형님에게 그 본인 처방을 고집한 이가 혹시 형님이냐고 물었다. 무달형님은 알 듯 모를듯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비방은 없음을 여러 번 언급하셨다. 한 번은 경영을 잘하는 학생이 있어 중국의 어느 명의로부터 많은 돈을 주고 처방을 받아 써보니 좋더라며 자랑했다. 나중에 그는 선생님에게 그 처방을 보여줬는데, 선생님은 이 처방은 이러저러한 상황에는 맞을지 몰라도 계속 그 증상이라고 쓴다면 필시 부작용 날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그 처방에 대한 해석을 하여 의미만 참고할 뿐이지, 증상에 매여서는 정작 사람을 놓치게 되니, 병은 나았는데 사람의 기운은 회복 못하는 기이한 병으로 갈 수도 있다고, 너무 비방을 쫓지 말라고.


선생님은 한의학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기본적인 인성을 많이 강조하셨어. 특히 집안의 화목을 강조하셨는데, 그 핵심은 어른이 중심을 잘 잡고 있되 아래로 향하라고 이르신다. 무달형님은 이 대목에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역할은 필요하다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상황도 있음을 풀어 얘기한다. 가정의 화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제 잘못을 빈 들 무슨 허물일까라며.


그릇을 키우고, 마음을 맑히며, 너무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말 것을 늘 강조하신 선생님은 갖은 예를 들어 당부하셔도, 학생들 중에는 공부와 행동을 따로 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배움과 습득은 또다른 차원이었던 것이다.

오십 넘은 어느 학생의 일이었다. 그날 공부가 끝나고 몇몇은 선생님의 공부 얘기를 더 하자며 식당에 모였다. 서로 느낀 바를 나누며 술도 한 잔 했으리라. 그중 한 명이 집에서 그만 정신을 잃고 응급실로 갔다. 뇌출혈. 원래 욱하는 성격을 걱정한 선생님은 오죽하면 그의 호를 淸心이라 지었을까. 사경을 헤매다 다행히 깨어났지만 이미 손상된 정기신의 기운은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기 어려웠다.


담벗, 물가로 소를 끌고 가도 물을 먹일 순 없듯이, 결국은 본인의 行이요, 스스로의 生이 않겠나? 무달형님은 내게 검은색 하드카바의 책을 건네며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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