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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29. 2024

개구리 소리

외로움이 익숙한  

물을 잡아놓고 모내기를 마친 논에

해가 지면 사방에서 개구리 소리가 쟁쟁거린다며

전화로 그 소리를 들려주는 선배는 쟤들 왜 저렇게 와글거리냐고


조용히 살고 싶어 산 아래로 이사를 가서 집 짓고 산 지 몇 년

삽질로 허리 아프고 풀과의 전쟁을 하는 중에도

마지막 양식이 될 책을 골라 필사를 하는 맛이 있다며 내게도 권한다


오랜만의 연락에 반가워 책 한 권 사서 편지를 동봉한다

무슨 선물을 하든 손 편지 한 장 없으면 단무지 빠진 김밥이다

다 쓴 편지는 내가 읽기도 벅찬 악필이지만  

그래도 끄적임의 가치 충분하다고 자위하면서 보낸다


내 일상과 최근의 고민들을 써보지만 

어쭙잖은 삶의 껄렁한 내용이 억지스럽지 않은 걸로 만족한다

말미에 이름대신 개구리 그림을 살짝 그려 넣고 '깨골'


며칠 후 밤늦게 단내 나는 목소리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놈을 누르면 소리가 날 것 같아. 건들면 뛸 거 같아. 잘 그렸네. 

요놈 눈동자가 살아있어. 


밋밋해서 재미 삼아 대충 넣었어요. 장난기가 발동해서..

좋았어, 운치도 있고. 파리를 잡아먹을 심산이야

근데, 보는 사람이 자기식대로 해석하게 두라. '깨골'은 사족이거든


그림 그려보라, 배우지도 않고 잘하네 등등의 간지러운 얘기를 하는 게 

이만 멈출 시간이다. 

보낸 책이나 편지에는 말없고 조그만 개구리 그림에 찍혔다


의무감의 가혹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에게

쓰는 동안 그를 만나고, 받을 때 쪼갤 그의 눈빛 상상한다

희망 이딴 거 말고 그냥 한 발씩 꾹꾹 눌러 걷는 거지 란다


보름인지 밤하늘이 밝고

논물 개구리들은 시끄럽게 울다 사람 발소리에 일시에 조용하다

달빛을 읽다가 내용을 들킬까 봐 모두 입을 닫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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