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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09. 2022

탄하율자(呑下栗刺)

목구멍에 걸린 밤송이 가시

밤송이 가시가 목에 걸려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이 딱 걸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있을 수도 없다. 곤란하고 난감하다. 콱 막힌 게 숨쉬기도 불편하다.


예전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애를 먹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더욱 답답했다. 가만있으면 몰라도 물만 마셔도 자극이 느지고 심지어 침만 삼켜도 따갑다. 맨밥을 꿀떡 삼키면 쑥 내려간다고 해서 해봐도 안되고 결국 참고 식당을 나와 동료에게 입을 딱 벌려 긴 핀셋으로 겨우 해결했었다.


탄하율자. 이 글을 읽자마자 너무나 생생히 상황이 떠올라 다시 목구멍이 막힌다. 보통의 율자(栗子)는 알밤으로 맛있는 군밤이어야 하는데, 느닷없이 율자(栗刺)라고 해놨으니 밤송이 가시가 되어 목을 찌르는 느낌이다. 사방으로 돋은 가시가 삼키려는 내 목에 걸려 따갑고 아프게 느껴진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글을 써서 나를 괴롭히나? 그게 누구든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든 당장 나는 이 목에 걸린 가시를 없애야 한다.


어쩌면 모든 화두의 목적은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의문을 일으켜 황당하고 당황스럽게 다그치듯 몰아붙여 생각을 멈추게 하고 눈앞을 캄캄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크레바스 같은 깊은 얼음 계곡에 온 몸이 끼어 옴짝 못하게 가둬버리거나, 낭떠러지에서 헛디뎌 떨어지다 겨우 나뭇가지나 절벽 난간을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리게 하려는 거다.


그런데 한 참 후 나는 왜 이 육체로만 삼킨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목구멍이 좁다고만 생각해서 좁은 곳에 주먹만 한 가시 가득한 밤송이를 삼키려는 생각을 일으켰을까? 이게 덫에 걸린 모양이다.


바람이 숭숭 부는 터널은 생긴 게 구멍 같아도 그곳에 밤송이가 떨어진들 아무 불편함이 없지 않나? 탄하(呑下)를 꿀떡 삼킨다는 동작의 swallowing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삼킨다는 모습은 계곡이 빗물을 삼키기도 하고 바다가 온 강의 강물을 삼키기도 한다. 구멍을 꼭 내 목구멍이라고만 생각했기에 감정이입이 일어나 그만 막혀버린 것이다.  


낙엽 지는 가을이라 쓸쓸함이라지만, 나무는 그대로인데 나뭇잎만 바라보았고, 단풍 들고 떨어지는 낙엽이기에 나도 너처럼 시들고 늙어간다고 동일시해서 생기는 감정이다. 여름의 더위든 겨울의 추위든 춘하추동이라는 변화의 한 부분이기에 어느 시점에서는 지독히 춥고 지치게 더울 수도 있다. 그 순간의 강렬함이 깊게 인상 찍히기로 각인되어 마치 항상 그런 것처럼 그러하다고 규정하고 믿어버린다.


부침의 숱한 과정 중의 어느 한 시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이게 현재와 부합되어 마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처럼 떠들지만, 멀리서 보면 파문(波紋) 일렁임의 어느 순간을 확대 강조한 것뿐이다. 물론 그때 그 상황에서는 눈에 보이는 게 없고 힘들고 내몰리 듯 쫓기듯 하여 아무리 한 발 떼고 살펴보라고 해도 들리지도 않겠지만.


길은 지나가는 순간순간은 항상 직선이다. 마치 미분점을 구하는 것처럼. 그러나 길은 어디나 곡선일 수밖에 없다. 그 시점에만 고정해서 보느냐 범위를 넓혀서 바라보느냐의 차이를 연습하는 수밖에. 한없이 범위를 넓혀보면 어떤 리듬이나 규칙성이 보이기도 하고, 그 순간이라는 게 그저 하나의 점点 정도이기도 하다.


밤송이를 아무리 삼켜도 걸림이 없이 넓고 넉넉하다. 목구멍이 이만큼 넓어졌으니. 가시가 더 날카롭든 더 길든 아무 상관없다. 온 대지가 다 받아준다. 밤꽃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군밤에 침이 고인다.


다시 어느 책의 글귀를 보다 또 막힌다.

하늘과 땅이 딱 달라붙어 있는데 너는 어디서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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