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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16. 2022

포집된 권위

꿈을 꿀 수는 있지만 꿈속이라서

좋은 사람 없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람이 내게 남자를 소개해달란다. 나를 두고 무슨 또 다른 남자가 필요한가 싶다. 뭐 그렇게 남자를 좋아하는 타입도 아닌데 대뜸 좋은 사람이라니. 좋은 남자의 기준과 조건이 도대체 뭔가. 그래 이왕이면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편이 훨씬 솔직하다.

좋은 남자? 많지. 나로 만족하지 못하나? 어떤 스타일을 찾는데?

나 말고 왜 내 친구 있잖아 미대 나온. 아직 결혼을 안 했거든.


그녀는 또래 여성에 비해 키도 큰 편이다. 170cm 정도 되니. 그리고 학부도 미대를 나왔고, 조교를 하고 있었으니 나름 외면적 조건으로는 괜찮은 편이었다. 아직 솔로인 친구를 생각하니 한 명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학부의 전공은 행정학과였지만 관심사가 바뀌어 예술과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영상과 사진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키도 175cm 정도 되고. 같은 예술 계통의 일을 하기도 해서 내 생각에는 둘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소개팅을 하고 나서 그녀는 본인 취향이 아니었는지 그저 그랬는가 보다. 남자 입장에서도 여자가 본인에게 크게 관심 없어하고 본인도 그다지 끌리지 않아 했으니 첫 만남으로 끝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직접 물어봤다. 좋아하는 타입이나 조건은 뭔지? 어느 정도의 사람을 원하는지? 이런 질문이 사람을 저울질하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영 아닌 경우를 거르고 싶었다. 집사람과 그렇게 친하다니 나도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지 않나.


일단 키는 본인보다 컸으면 좋겠고, 직업도 안정적이고, 집안에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얘기가 좀 통해야 앞으로 살아가는데 무난할 것 같고, 그리고 안 되는 조건의 하나는 개띠는 아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취향을 물었더니 희망사항을 나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중에서 반드시라고 할 만한, 예를 들면 이것만은 꼭이라고 하는 조건을 하나만 들어보라고 하니, 그녀는 본인이 제시한 조건들이 그리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외모에서 시작하여 성격과 직업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그렇게 뛰어난 인물을 찾기도 어렵지만, 그런 조건남이 굳이 왜 그녀를 택해야 하는지, 그만큼 그녀가 매력적인가 싶었다. 물론 그래도 다 짝은 있겠지만, 그런 조건에 부합할 정도의 그녀였다면 벌써 결혼했겠지. 다시 말하면 그녀는 결혼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아직 어리거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성실했다.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며, 과제 제출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제시간 안에 해냈으며, 교수님의 요구에도 늘 기준을 맞추거나 충족했다. 그러나 미대생에게 필요한 게 부지런하고 성실함인지 모르겠다. 예술의 세계에선 천재성은 아니더라도 본인만의 독특함이나 추구하는 방향성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여하튼 그녀는 학부 졸업 후 조교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준비했다.


담당 교수 입장에서는 그녀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나 보다. 그녀는 교수님의 수업 준비까지 도맡아 했으며, 학과와 상관없는 허드렛일도 교수님의 요구라면 그녀는 성실히 준비해서 교수의 눈에 들길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해서 취득한 석사 학위. 지도 교수는 그녀에게 본인이 퇴직할 날도 많이 남지 않았으니, 잘하면 추천식으로 그녀를 밀어주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는지, 그녀는 집사람과 같이 만날 때면 가끔씩 교수님이 본인을 많이 아낀다는 말을 한다. 자기가 가르친 학생을 스승이 제자를 아끼는 마음으로 좋게 얘기하는 정도일 것 같은데, 그녀가 착각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혹은 그녀는 어쩌면 교수 추천으로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 번은 담당 교수가 다른 미대 교수진들과 일본 견학을 가는데 일본어에 익숙한 그녀에게 안내 겸 준비를 부탁했다. 그녀는 일정과 미팅을 준비하면서 무척 바쁘게 보냈나 보다. 그런데 후일담으로 그녀에게 당연히 주어질 줄 알았던 비행기 삯과 체류비는 따로 책정되어있지 않았던가 보다. 그렇게까지 충성을 해야 하냐고 집사람에게 물어봐도 집사람도 의아해했지만, 친구는 뭐 그 정도쯤이야 하는 투로 기꺼이 그 견학에 동참했었다.


석사 학위를 딴 이후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 지도 교수는 그녀에게 시간 강사를 권했고, 그녀는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배정받아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그러나 시간 강사는 생각보다 박봉이었다. 막상 교통비와 식사비를 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지역의 대학교까지 알아보고 강사 자리를 따내어 두세 곳의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생활로 바쁘게 생활하며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학생들에게나 '교수님'이란 호칭으로 불려도 정규직이 아닌 이상 언제든 재계약이 취소될 수 있었고, 그나마 시간 강사를 유지하려면 정규 교수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해야 했다. 이제 박사 학위만 따면 언제든 강사 아닌 교수직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녀의 경제적 어려움을 잘 아는 집사람은 그녀에게 수업이 없는 시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보라고 권했다. 미술학원이야 미대 준비생들을 위한 곳이라 좀 그렇지만,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소소하게 생각보다 많으니, 일정한 장소를 정해 한 번 해보라고 해도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말 많은 아줌마들을 상대로 하기엔 좀 그렇다고 했단다. 난 좀 놀랬다. 교수라는 호칭에 너무 익숙한가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녀는 박사 학위를 땄다. 그러나 여전히 강사의 지위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다 대학교내 공개 교수 채용의 공문이 뜨고, 당연히 그녀도 지원을 하게 된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기존 교수진이 대거 퇴직을 하게 됐고, 학교에서도 그 빈자리를 시간 강사들로만 때울 순 없었다.


최근 집사람과 같이 만난 그녀는 수심이 깊다. 교수로 채용되어도 일반적으로 사립학교에서 공공연히 요구하는 무엇이 있을지도 모를 문제요, 채용에서 탈락하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기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결혼도 않고 뭘 위해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지 회의가 들 것 같기도 하다면서.


'꽃들에게 희망을'은 책 속의 내용만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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