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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순내기툰 Jan 31. 2021

내가 애견카페 서열 1위랍니다.

다섯 동생들을 거느린 까칠한 김 코코 여사의 추억.




"내 이름은 김 코코예요. "


엄마들은 자기들이 경주 김 씨라며 툭하면 나를 김코코라고 불러요. 이상한 엄마들이긴 하지만 어찌 됐던

나는 김코코라고 불리며 다섯 동생들을 거느린 10살 먹은 애견카페 서열 1위예요. 김달봉, 김삼식, 김솜, 김수달, 김봉구 우리들은 신림동 경주 김 씨 대가족이랍니다.


10년 전 엄마들을 처음 만난 곳은 독산동 홈플러스 안에 있는 동물병원이었어요. 잠에서 깨면 우선 간호사 언니들이 채워주는 아침밥 한 그릇 뚝딱하고 시원하게 볼일을 본답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유리벽 밖으로 펼쳐진 세상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요. 그 시절 나에게 주워진 세상은 패드 하나 달랑 깔린 좁은 유리장 안과 병원 밖으로 보이는 공간이 다였어요. 유리벽 너머 지나치는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가 저마다 마트에서 산 물건들을 산더미처럼 쌓은 채 어두운 주차장으로 사라져요. 가끔씩 우리랑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오곤 했어요.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유리벽을 톡톡 두드리면서 나와 옆방 친구들을 번갈아 들여다보다가 어느덧 선택의 기로에 서게 돼요. 잠시 동안의 고민 끝에 몇몇 사람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병원문을 밀치고 들어온답니다. 뭐 물론 와~귀엽다 우리들을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다가도 그냥 제갈길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해요. 아무튼 병원으로 들어온 대부분 사람들은 친구들 하나씩 데리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어요. 그들의 손에는 항상 친구들이 먹을 사료랑 간식이랑 장난감이 잔뜩 들려있었어요. 이름 없는 강아지 시절, 좁은 유리방에서 구출되어 새로운 가족들과 어디론가 향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쓸쓸해지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답니다. 잠시 후 친구들이 떠난 빈 옆방은 새로운 친구들로 금세 채워졌어요.


엄마들을 처음 만난 날은 2010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무렵이었을 거예요. 나는 처음 보자마자 바로 운명이구나 느꼈는데 엄마들은 내가 아닌 옆방 요키 애들과 몰티즈 애들만 넋 놓고 보고 있더라고요. 젠장 나한텐 눈길도 안 주더라고요.


"나 좀 봐줘요." 

"걔 말고 날 데려가라고요!!"


한참 동안 이 아이 저 아이 안아보고 고민하는 듯한 엄마들의 시야에 드디어 내가 들어왔어요. 엄마들이 나를 볼 때까지 두발로 유리벽을 두드리며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거든요. 춤추는 아기 푸들을 처음 보는지 엄마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어요. 잠시 후 나를 꼭 끌어안고 쓰다듬는 엄마들의 손에서 진한 핸드크림 냄새가 났어요. 그다지 유쾌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상관없었어요. 내가 추울까 봐 롱코트 안에 나를 꽁꽁 감싼 엄마의 품은 포근했고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그 안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거든요. 견생 2개월째 드디어 나한테도 가족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사진들을 찍는 엄마들은 분명 내 안티가 확실해요.


처음 우리 집에 갔을 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예은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엄마들의 조카인 예은 언니는 날 보자마자 좋아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안고 이방 저 방 뛰어다니는 거예요. 내가 너무 놀라 오줌을 지렸는데도 개의치 않고 오줌 묻은 나를 얼싸안고 폭풍 뽀뽀를 해댔어요. 나에 대한 격한 애정공세가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 집에서 사는 게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착각이었어요~!"


엄마들은 우리 같은 강아지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왕초보였어요. 내가 이갈이 하느라 첫 이빨이 빠진 걸 보고 발톱이 빠진 줄 알고 놀라서 병원에 전화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여자인 내가 첫 생리를 했을 때도 피가 난다고 집안이 한바탕 뒤집어졌었지요. 작은 엄마가 처음 내 발톱을 자를 때 너무 바짝 깎아 피가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하답니다. 그때 기억 때문에 아직도 엄마들이 발톱 깎이만 가지고 다가오면 나는 이리저리 도망가기가 바빠요. 나는 세상에서 발톱 깎이, 귀 청소 하기, 목욕하기, 미용하러 미용실 가기가 너무 싫어요. 아니다 싫은 게 또 하나 있어요. 엄마들 없는 빈 집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는 게 제일 싫었어요. 엄마들 출근 후 긴 시간 동안 심심했던 나는 패드 찢기 놀이를 하거나 이가 간지러워 벽지나 장판을 씹기도 했는데 그것들도 어느 순간 지루해지면 현관문 앞에 엎드려 엄마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어요. 내가 혼자 있기 싫어하는 걸 아는지 엄마들은 퇴근하기가 무섭게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로 집으로 달려왔어요. 그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심심했던 나를 안고 산책을 나갔어요.

                                          숨기고 싶은 김코코 여사의 과거랍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들은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여행도 참 많이도 다녔네요. 바다도 가고 캠핑도 가고 펜션을 갈 때도 항상 우리는 함께였어요. 소싯적 나는 사료 따위는 먹지 않는 미식가였답니다. 엄마들은 내가 사료를 안 먹으면 전전긍긍하며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나 닭가슴살 그리고 달걀노른자를 섞어줬어요. 소고기는 한우밖에 안 먹었고 가끔씩 엄마들의 와인 안주였던 연어는 마지막엔 다 내 차지였지요. 


하지만 


나의 화려했던 과거.. 영국 여왕님의 강아지들도 부럽지 않은 시절이 점점 끝나가기 시작했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엄마들은 나랑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며 애견카페를 하겠다는 거예요. 나는 우리 가족들 이외에 낯선 사람들도 싫고 낯선 강아지들도 정말 싫은데 내 의견도 묻지도 않고 엄마들의 애견카페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개업 준비를 하는 엄마들을 바라보면서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였어요. 엄마들이 좋아하는 이승환 아저씨의 노래 중 가사가 떠오르네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내가 2살이 됐을 무렵 갑자기 백설기처럼 하얗고 살찐 덩어리 한 놈이 집안에 불쑥 쳐들어오는 거예요. 천안에서 온 이 녀석은 오자마자 이방 저 방 휘젓고 다니며 물어뜯고 부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엄마들은 이 녀석을 달봉이라고 부르면서 쫓아다니는데 그 녀석이 싼 산더미 같은 똥과 홍수처럼 쏟아내는 오줌을 치우느라 금세 파김치가 되더라고요. 래브라도 레트리버답게 힘도 어마 무시하게 세고 밥그릇도 씹어먹을 듯한 엄청난 식탐에 사고뭉치였던 이 녀석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어요. 평화롭고 안락했던 우리 집이 난장판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한시도 쉬지 않는 에너자이저 달봉이랑 나는 우리 애견카페의 카페견이라  불리며 나 김코코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고생길이 열리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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