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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순내기툰 Mar 03. 2021

골든 레트리버의 탈을 쓴
천사 삼식이

철딱서니 없는 형보다 의젓한 삼식이 자랑 좀 해볼게요.


달봉이는 십자인대 수술 후 정확히 열흘 동안 입원했었다. 우리는 열흘 동안 달봉이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8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첫 번째 비만세포종 수술 때 하루 입원한 날 이후 하루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우리들. 넓지도 않은 카페와 집에서 느껴지는 달봉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우리는 하루하루 병원에서 보내주는 달봉이의 회복 동영상을 보면서 그리운 마음을 간신히 달래며 퇴원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달봉이의 빈자리에 동생들도 우울해했다. 특히나 삼식이는 잘 놀지도 않고 무기력해하고 마지막으로 달봉이가 사라진 문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삼식이는 달봉이보다 6개월 어린 동생이며 골든 레트리버다. 삼식이가 처음 왔을 때가 기억난다. 녀석을 처음 만나자마자 우린 한눈에 반했다. 



2013년 3월 22일 3개월령 삼식 와의 첫 만남



삼식이의 고향은 안산으로 가정 분양 중인 아이들 중 마지막 남은 아이였다. 형제들 중 제일 몸집이 컸던 삼식이. 보내면서 마지막이라 안타까웠는지 사과나 간식 이것저것 많이 먹여 보내는 바람에 차 안에서 세 번이나 먹은 것을 게워냈던 삼식이는 유난히 멀미가 심한 아이였다. 출퇴근할 때마다 멀미를 해서 한동안 삼식이도 고생했고 토사물을 매일 치워야 하는 우리도 힘들었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도 끄떡없을 정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강아지가 된 삼식이. 아기 골든 레트리버의 전형적인 귀여움과 앙증맞은 외모를 갖춘 삼식이는 손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달봉이를 처음 봤을 때는 예상보다 큰 몸집에 놀라 이름조차 물어보지도 못하고 데려왔지만 삼식이는 보자마자 반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러버렸다. 우리를 비롯해 손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그런지 처음에 달봉이는 삼식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사람 좋아하고 강아지들과 친화력이 뛰어난 달봉이지만 삼식이가 놀자고 다가오면 찬바람 불며 내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자기 품 안에 파고드는 삼식이를 받아주게 된 달봉이는 지금은 최고의 우애를 자랑하는 레트리버 형제가 됐다. 가족이 된 지 8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달봉이가 동생 삼식이를 따라다니며 칭얼거리며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 형국이 됐다. 


달봉이 형을 유독 따랐던 아기 삼식이.



9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달봉이와는 달리 아기 때도 의젓했던 삼식이는 그 나이 때 강아지들이 흔하게 부리는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컸다. 산책도 잘해서 훈련 한번 안 시켰는데도 마치 안내견처럼 항상 우리의 보폭을 맞춰가며 눈을 응시하며 걷는 아이였다. 식탐이 있어도 인내력이 강한 아이라 달봉이처럼 사료그릇을 향해 달려들지 않고 침을 한 바가지 흘릴지언정 항상 우리가 먹어~! 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삼식이가 만일 안내견이 됐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안내견이 되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가족이 된 삼식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손님들에게도 매일매일 힐링을 선물해준다. 많은 손님들이 삼식이의 배려와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에게 종종 손님들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제가요~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우울했었는데 오늘 유독 삼식이가 저만 따라다니는 거예요~"


"남자 친구랑 싸워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데 삼식이가 따라 들어와서 핥아주는 거예요~"


사람의 감정을 기가 막히게 잘 읽는 삼식이는 특히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유독 따라다니며 걱정한다. 어느 날 조카 예은이가 엄마와의 다툼으로 우울한 마음으로 찾아온 날이 있었다. 삼식이는 이날도 역시 하루 종일 예은이만 따라다니며 표정을 살피며 안기며 치대고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게 역력했다. 삼식이의 이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속 깊은 배려심은 얼마 전 달봉이의 퇴원 후 더욱더 깊어졌다. 열흘 동안 힘겨웠던 입원생활 후 퇴원한 달봉이를 동생인 삼식이가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산책 다녀오자마자 가장 먼저 달봉이한테 달려간 삼식이는 달봉이가 잘 있었는지 이리저리 살피며 심지어 핥아주기 까지 하는 것이다. 개가 핥아주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삼식이는 사람이든 강아지든 뽀뽀 아니 핥아주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 아이다. 그런데 요 근래 들어 부쩍 마치 어미개가 자기 새끼를 챙기듯 형 달봉이를 챙기는 삼식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감동받았고 그때마다 숙연해졌다.


수술 후 뛰어다니려는 달봉이를 제지하는 형 같은 삼식이


수술 후 이젠 살만한지 달봉이는 요새 자꾸만 장난도 치려고 하고 뛰어다니려고 한다. 아직 뼈가 완벽하게 붙은 상태가 아니어서 쫓아다니면서 만류하는데 중간에 삼식이가 목줄을 가로채서 단호하게 제지하는 모습에 우리는 또 한 번 이 녀석에 대해 감탄했다. 삼식이 역시 2년 전 양쪽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했었으며 누구보다도 달봉이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달봉이를 만류하는 것 같았다. 삼식이의 속 깊은 배려는 퇴근 후 잠자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출퇴근할 때 달봉이는 뒷좌석에 대자로 길게 누워 자면서 가는데 삼식이는 그런 달봉이를 배려해 쪼그려 앉아서 간다. 카페 영업시간 동안 피곤해진 코코나 막내 봉구는 항상 삼식이의 풍성한 꼬리털을 쿠션 삼아 휴식을 취한다. 또한 위탁한 작은 강아지들도 삼식이의 품에 파고들지만 삼식이는 한 번도 이 아이들을 내친 적이 없다. 좋아하는 단골 형아나 누나가 와서 가고 싶어도 새로 온 손님들에게 다가가 기꺼이 스킨십을 허락하는 아이. 골든 레트리버는 천사가 분명했다. 사람한테도 다른 강아지들한테도 한없이 베푸는 이 아이의 존재가 너무도 감사하고 하루하루 감동하고 있으며 또한 이 아이의 베풂에 많은 걸 배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뒤돌아보니 삼식이가 그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치겠다. 글은 여기까지 쓰고 삼식이한테 다가가서 그 말랑거리는 인절미 같은 볼따구니에 폭풍 뽀뽀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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