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에 가다
​- 2.맥주 맛도 모르면서!

서울 여자, 도쿄 여자 #9

by 김경희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왜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이는 걸까요? 아니면 돌아서는 사람은 별 생각이 없는데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허전해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우리가 다시 만난 1년 사이 작가님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네요. 더 바빠지고 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하겠지만 너무 재밌기도 해서 정신없는 그런 때, 사실 그 시기는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헤어질 때 모유 수유를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 작가님의 모습(두 번쯤 뒤돌아보시더군요)에서 저는 호박마차를 타러가는 신데렐라를 보았답니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 말기로 해요 우리. 구두가 벗겨진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뛰어가던 왕년의 신데렐라는 요즘 시대에 맞지도 않고 딱히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빛나는 유리구두보다 이젠 폭신한 운동화가 더 좋지 않나요? 중년이 된다는 것, 가끔은 이런 점이 마음에 쏙 들어요.


신주쿠는 정말 사람도 많고 혼잡하더군요. 신주쿠의 상징 건물인 ‘스튜디오 알타’ 앞에서 오후 3시에 만나기로한 우리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저 사람인가? 아니야, 저런 느낌은 아니었어. 이런 생각을 무수히 반복하며 작가님을 기다리는데 정각 3시에 당신이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5개월 된 아이를 집에 두고 약속 시간에 맞춰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놓고 나왔어야 할까요. 그럼에도 약간은 상기된 혹은 설렘을 가지고 한달음에 뛰어나온 작가님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양팔을 벌려 안고 말았어요. 사실 부탄에 다녀온 후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어요. 반가울 때, 혹은 헤어지기 아쉬울 때 저도 모르게 양팔을 벌리고 사람을 안고는 합니다. 부탄 여자들에게 배운 거예요. 그곳 여자들이 저에게 그렇게 해주었거든요. 이방인이든 아니든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 늘 사람이 벽이잖아요. 그 벽안에 어떤 아름다운 세계가 있는지 알려면 벽을 부숴야 할 거에요. 벽을 부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따뜻한 눈빛이 될 수도 있고, 진지한 경청이 될 수도 있고요. 네 그래요 작가님. 제가 터득한 방법은 양팔을 활짝 벌려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도쿄에서의 며칠은 늘 맥주와 함께였어요. 언젠가 비행기에서 기내식과 함께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던 찰나 한 여인(사십대 후반쯤?)의 목소리가 제 귀를 사로잡은 적이 있었어요. ‘실례합니다. 오렌지 주스 말고 맥주 없나요?’ 상당히 자연스러운 표정과 낮은 음성으로 맥주를 주문하던 그 여인!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날 저는 어떤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답니다. 그래! 모름지기 어른여자란 맥주가 있는 식사를 주문하는 거야! 라고 말이죠. 그 후로는 아주 뻔뻔스럽게 비행기에서 기내식과 함께 맥주를 주문하곤 합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익숙한 표정을 하고 말이죠. 그럴 땐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이렇게 묻습니다. 맥주가 그렇게 좋아요? 저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한번 끄덕입니다. 몰랐어? 나는 어른여자라고! 아마도 그걸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도쿄에서는 음식을 주문하기에 앞서 항상 맥주(혹은 음료) 주문을 받는 것 같았어요. 스시를 먹어도 그렇고 교자나 라멘을 먹어도 그렇고, 도쿄 사람들은 언제나 맥주와 함께였어요. 음식이 짜서 그럴까요? 아니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톡 쏘는 청량한 맛 때문일까요? 혹은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사실 맥주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에요. 술보다는 안주에 집중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도쿄에 다녀온 뒤로는 오! 맥주가 참 맛있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도 맥주 맛은 잘 몰라요. 그럼에도 요즘은 집에서건 밖에서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맥주를 곁들입니다. 날이 더워진 요즘은 더하죠. 치킨에 맥주, 피자에 맥주, 혹은 만두에 맥주,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도쿄에 가면 더 많은 맥주를 맛볼 테야, 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답니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딱 그 꼴이죠? 그래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맥주 맛도 몰랐던 제가 늦게나마 맥주 맛에 살짝 눈을 뜨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뭐든 때가 있는 게 아닐까요. 뭐든 너무 늦은 것은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아, 미안해요! 모유 수유중인 당신에게 맥주 이야기를 너무 오래했군요!^^; 제 나이 마흔 한 살, 뒤늦게 맥주 맛에 눈을 뜬 서울여자랍니다.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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