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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아기 낳기

by 키다리쌤

어제 쌍둥이들과 판다가 아기 낳는 장면을 보았다. 도와주는 사육사와 수의사들은 밖에 있지만 방안에 혼자서 아기 낳기 위해 진통하는 판다를 보면서 8년 전 겨울! 둘째를 낳던 날이 떠올랐다.


머나먼 타국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생각에 얼마나 긴장했던지 영어와 독일어로 출산 용어를 정리해 놓고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가능한 답변을 생각하고 미리 써놓았다. 그리고 아기 옷과 병원에서 사용할 짐을 다 싸놓고 기다렸다. 한국에서 나의 출산을 돕기 위해 9살 어린 막내 동생이 스위스에 와 있었다.


뱃속의 둘째가 세상에 나오고 싶다는 고통의 신호를 보내자 멀리 출장 가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기가 나올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에 같이 가자."

눈이 펑펑 오는 밤이었음에도 남편은 눈길을 뚫고 왔다. 그리고 나는 뒹굴어 갔는지 기어갔는지 산통에 힘들어하며 병원에 갔다. 병원에만 가면 끝날 것 같던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남편에게 "손 꼭 잡고 있어. 어디 가면 죽여버릴 거야." 평소 안 하던 험악한 말들까지 해가며 남편이 꼼짝없이 내 옆에 있게 했다. 그러나 한두 시간이 아니라 세네 시간 넘게 손을 잡아주던 남편이 주차 문제로 차를 옮겨야 해서 병원 밖에 나갈 일이 생겼다. 고통 중에 홀로 누워있는데 가만히 내 곁에 와서 내 손을 잡아 주던 간호사 선생님! 스위스는 분만을 기다리는 산모를 위해 병실 하나를 온전히 내주었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었다. 고통이 좀 나아지게 하려고 무릎에 침도 놓아주시고 남편이 없을 때는 손도 잡아 주시던 간호사 선생님의 손이 참 따뜻했다.


산통이 12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서야 개구리 같은 둘째가 미끄덩덩 내려왔다. 신기하게도 스위스에서는 헤바메라는 산파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긴급 상황에서만 들어오시고 출산 후에 산모와 아기 건강 상태 체크만 하셨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 고통은 사라졌다. 남편과 간호사 선생님 사이에서 큰 소리가 오고 가는 것 같아 급하게 나가보았다. 들어 보니 스위스에서는 아기를 낳고 바로 씻는 모양이었다. 한국 문화에서는 산모는 당분간 씻으면 안 된다고 하는 남편과 위생을 위해서 씻어야 한다는 간호사 선생님 사이에서 나는 "오늘은 힘겹고 한국문화 동양인 체질이라 걱정도 됩니다. 내일은 괜찮아지면 꼭 씻어볼게요."라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 병실로 올라갔다. 원래 세 명이 같이 사용하는 병실인데 나만 혼자 삼일 동안 이 병실을 사용했다. 진짜 산모가 많지 않아서인지 씻지 않아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큰 병실을 혼자 아이와 함께 사용했다.


스위스에서는 출산하고 나면 무조건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 모자동실!


그러나 첫째를 한국에서 제왕 절개로 낳아서 경험해본 한국 문화는 신생아는 신생아들끼리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엄마들은 병실이나 산후조리원에서 쉰다. 그리고 아기들은 간호사 선생님의 돌봄 아래 있다가 가끔씩 엄마를 보러 온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나와 산후조리원에서 2주 몸조리를 했었는데 새벽마다 가슴에서 흐르는 젖이 그렇게 아까운 초유였는지를 그때는 몰랐다. (초유는 출산 후 4~10일 동안 분비되며 적은 양이지만 아기에게 꼭 필요한 영양 성분과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면역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초유의 비밀을 모른 채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젖을 먹이려 하자 이미 젖병에 익숙해진 첫째는 모유를 거부했었다. 물론 모유 수유를 무조건 성공하고 싶은 엄마의 피나는 노력으로 (돼지족도 삶아 국물을 마시고, 모유 가슴 마사지도 받고)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었다. 모유반 분유 반으로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엄마의 피나는 노력 없이는 한국의 아이들은 초유를 온전히 먹지 못한다. 그에 반해 스위스는 철저하게 모자 동실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다. 대신에 산모를 위해 아기를 돌봐 주는 서비스는 기대하기 힘들다. 가끔씩 찾아오는 남편이나 동생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산모인 엄마의 몫이다.


그러나 스위스 병실에서 아기를 돌보며 지내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출산 후 몸도 추슬러야 하지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는 아이를 돌봐야 하지 차라리 집에서 남편이랑 동생이랑 교대로 돌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이 출산 후 두 번째 밤에 간호사 선생님께

"아기가 너무 울어요. 모유가 부족한지 뭐라도 아기가 먹을 것을 좀 주셨으면 좋겠어요."부탁을 드렸다.

첫째를 한국에서 낳아서 분유가 담긴 분유병을 가져올 것으로 상상했었나 보다. 그러나 스위스 간호사 선생님이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가져오신 것은 약병 뚜껑에 있을 법한 조그만 플라스틱 컵에 담긴 약간 달달한 베이비 티였다.


맙소사! 이 플라스틱 컵으로 신생아에게 꼴깍꼴깍 마시게 하라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무슨 상상을 한 것인지... 스위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고 6개월까지는 꼭 모유 수유를 하도록 권장하고 의료 시스템도 그에 맞춰 설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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