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가게 되었을 때 옛 제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아기 키우기 좋은 나라 1위인 스위스에서 아이 키우게 된 것을 축하드려요."
전화받기 며칠 전 6학년 때 가르쳤던 옛 제자들이 찾아와서 함께 밥 먹으며 이런저런 일을 나누었었는데 최근에 스위스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신문 보도를 보고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맞다! 내가 살면서 느끼기에도 스위스는 아기 낳고 키우기 좋은 나라였다. 내가 피부로 체감했던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다.
첫째, 스위스에서는 아기 낳는 비용이 공짜였다.
선진국이니까 제도적으로 잘 되어 있겠지 하는 기대만으로 갔는데 실제로 아기 낳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산부인과에서 정기 검진받는 비용도 공짜! 산모에게 필요한 약으로 처방받아 먹게 된 약도 공짜! 그리고 출산으로 인해 병원에서 며칠 머물게 되면서 생기는 비용도 공짜! 그리고 심지어 아기가 태어난 이후 10회에 걸쳐 아기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집에 방문하여 상담해 주는 간호사 서비스(헤바메) 비용도 공짜였다.
아기를 낳는데 드는 비용은 나라와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하는 구조였다. 물론 외국인인 우리 가정도 한 사람당 15만 원 정도씩 보험비를 냈다. (어른 20만원 정도, 아이들 10만원 정도) 그러나 스위스에서는 보험이 의무였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내야 하는 돈이었다. 스위스 사람들끼리도 출산하면 그동안 보험비 냈던 것 "본전 뽑는다" 할 정도로 출산은 이득이었다.
둘째, 아이당 20만 원씩 지원이 되었다.(우리는 외국인이어서 받지 못했다)
아이들 키우는 입장에서 돈들 일은 참 많다. 해마다 키가 자라니 옷도 사야 하지 먹여야 하지 씻겨야 하지 옷값에 식료품값에 휴지, 샴푸 생필품 비용 등등 아이가 많을수록 돈도 많이 든다. 지난 5월에 아이들에게 “너희들 원하는 방과 후 다해"라고 말했었다. 어차피 2~3만 원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방과 후 수업이 만만했다. 그러나 둘째, 셋째, 넷째 모두 3~4과목의 방과 후를 신청했고(2달치 비용) 재료비 포함이었지만 그 달에 방과 후 수업만으로 100만 원에 가까운 96만 원을 내야 했다. 한국에서 중학생 1명, 초등학생 3명 네 아이를 키우면서 피부에 와닿게 좋았던 다자녀 정책은 거의 기억에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 주던(만 5세 이하) 10만 원도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주지 않으니 초등학생이 되면 돈이 더 필요한데 말이다.
셋째 아이용품 바자회가 동사무소에서 1년에 2번씩 열렸다. 자가격리 중인 요즘 옷장과 신발장을 열어 정리하다 보면 꽤 쓸만한 옷과 신발이 나온다. 몇 번을 못 입어 작아진 한복과 몇 번 안 신은 신발은 정말 버리기 아깝다. 예전에도 지역 카페에 드림으로 올렸더니 드림을 받고 싶다는 채팅이 수십 개 올라왔다. 어차피 한해 지나면 아이는 크고 작아진 옷들과 신발들은 해마다 처리하는 것 또한 고민이다.
스위스에 살 때는 1년에 두 번 동사무소 주관으로 큰 바자회가 열렸다. 아주 싸게 팔지는 않았지만 아기 침대나 아기 흔들의자, 자전거, 스키, 스케이트 등 10만 원 넘는 비싼 물건들도 많이 있었다. 물건이 팔리면 파는 사람도 돈을 돌려받는 구조 같았다. 한국에서 바자회라고 하면 거의 기부하는 문화여서 10만 원 넘는 자전거나 스키 등이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스위스 바자회는 돌려받는 구조이기에 어차피 한해에 두 번 아이 옷 정리할 겸 각각의 집에서 아이들 물건이 쏟아져 나왔고 아이들 키우는 엄마로 아이 옷, 자전거, 스케이트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산후조리를 위해 스위스에 와 있던 막내 동생을 시켜 둘째 아기 옷과 흔들의자 등 아기용품과 스케이트 등을 잔뜩 사 오도록 부자 동네 동사무소 바자회에 보냈다. 그리고 20만 원만 주었다. 그러나 동생은 필요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사 왔다. 새 제품으로 다 사려면 100만 원이 족히 들었을 물건들을 저렴하게 사 온 것이다. 이런 아이 물건 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스위스에서는 동사무소와 같은 정부 기관이 나서서 물건을 처리해야 하는 엄마들과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엄마들의 번거로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 신선했다. 누구나 말은 안 해도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바라는 제도인 것 같다.
넷째 아이 돌봄의 선택 폭이 넓었다.
몇 년 전 신문에서 학교 돌봄 시간을 아침 7시에서 밤 10시까지 늘린다는 기사를 보고 차라리 일하는 아이 엄마들을 일찍 집에 보내주지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요새는 방과 후에도 심지어 방학중에도 학교 돌봄 제도로 엄마가 일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방학은 아이들이 학교를 쉬게 하려는 제도인데 방학인데 돌봄으로 학교 오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과연 학교는 아이들을 돌보기에 알맞은 구조로 설계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아니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 돌봄을 가기 싫어 교실에 더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학교는 돌봄의 장소로 적합하지 않고 우리는 깊이 있게 아이들 돌봄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 어머니 없이 홀아버지 밑에 자라는 여자 아이가 밤낮없이 일하는 일용직 아버지가 일하러 간 사이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과연 우리의 돌봄은 잘 되어 있는지 의문이었고 우리가 만드는 제도가 어려운 이웃을 향해 조금 더 손을 뻗어주길 간절히 바래 보았다.
스위스에서는 학교에서 실시되는 돌봄 뿐만 아니라 동사무소에서 아이돌보는 이모(Kinderfrau)제도로 아이 돌봐주는 집들이 등록되어 있었다. 물론 소득에 따라서 아이 돌봄 비용이 달라진다. 잘 사는 가정에서는 더 많이 내고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적게 낸다.
스위스에 살 때 아랫집 할머니 집도 동사무소에 등록되어 있는 집인 것 같았고 오후에는 초등학생 아이 둘이 와 있었다. 할머니는 미술 활동을 좋아하셔서 아이들과 미술 작품도 같이 만들고 간식도 챙겨주셨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이터에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편히 쉬도록 돌봐주셨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카페마다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 돌보는 사람 구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아이 돌보미 제도가 있지만 이미 그 제도를 이용하기엔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아이 돌볼 사람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하는 엄마들이 안타깝다.
차라리 우리도 스위스처럼 동사무소에서 일하기 원하는 할머니들이나 아이 다 키운 아주머니들이 동사무소에 등록되어(보건증, 주민등록등본 받아 신분 확인함) 남의 집 가지 않고 자기 집에서 집안 살림할 것 다 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 좋아할 만한 각자 잘하는 활동이나 제공 가능한 교육방침을(책 읽기, 미술활동, 숙제 봐주기, 수학 학습 등등) 제공하여 일하는 엄마들이 동사무소 등록된 가정 중에서 아이들을 편하게 맡기고 일하게 하면 어떨까 기대해 본다. 내가 사는 근처에 등록된 집이고 그 집 가족 구성원이 누구인지 다 알고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가정으로 진짜 이모는 아니지만 동사무소에서 맺어진 이모 인연으로 아이들 아플 때도 편하게 쉴 수 있고 엄마 대신 병원에도 데려가는 진정한 돌봄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런 돌봄은 다양한 돌봄이 가능해진다.
수요자의 필요에 따른 다양한 시간대의 돌봄이 가능해지고 다양한 유형의 돌봄이 이뤄질 수 있다.
몇 해 전 쌍둥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면 잘 놀아 주는 초등학교 4학년 언니가 있었다. 깜깜한 7시가 되어도 집에 안 가길래 물었더니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한다. 집에 가서 더 놀겠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해서 언니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척 미안해하시면서 우리 집에서 놀게 하셨었다. 엄마들이 일하는 시간대는 다양하다. 일찍 일하러 나가는 엄마들도 밤에 늦게 퇴근하는 엄마들도 있다. 편하게 손쉽게 돌봄을 이용하게 돌봄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또한 작년에 둘째 친구를 놀이터에 데리고 다녔다. 직장인 엄마의 로망은 오후에 아이가 학원 뺑뺑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있는 엄마들이 놀이터에 나가 있는 그 시기에 또래 아이(반 친구들)들과 함께 놀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1학년 이하인 아이들을 혼자 내보내기는 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어차피 둘째, 셋째, 넷째를 데리고 놀이터 나가는 김에 같이 데리고 다녔었고 늘 고마워하셨다. 이렇게 다양한 서로의 필요를 연결해 주기 위해 동사무소 등록된 이모 돌봄이 기획되고 운영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