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살다 보니 스위스의 의료 체계에 대해 몸소 체험해 보게 되었는데 내게는 우리나라에 없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아이들로 인해 예방 접종이나 열이 나거나 배탈이 날 때도 소아과에 많이 가게 되었고 연이은 출산으로 산부인과에도 자주 방문했다. 산부인과로 자주 가던 곳은 종합병원(Spital Limmattal)으로 우리 집에서 버스로 4~5 정거장 거리였다. 인구가 한국의 서울처럼 많지 않아서인지 의사를 만나면 10~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이렇게 의사들과 대화할 때 권위적이기보다는 참 친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남편은 왜 안 보이는지 뭐 하고 지냈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나의 개인적인 건강 상태까지 물어보면서 태아는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신기한 것은 치료나 진료를 받고 병원에서 돈을 안 내고 집으로 고지서가 날아온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의료 보험 제도는 이미 설명했듯이 일인당 20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낸다.
그리고 어른의 경우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10만 원가량 고지서가 날아오고 어린아이의 경우는 10만 원의 1/10인 1만 원가량 고지서가 우체통으로 날아왔다. 보험료를 내더라도 치료 고지서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차이는 죽을병에 걸렸을 때 갈린다. 스위스에서는 돈이 많이 드는 큰 병은 보험회사에서 처리하고 우리나라는 사소한 감기는 보험의 혜택을 받아 싸게 진료받을 수 있는 반면 큰 병의 경우 각 개인과 그 가정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보험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큰 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없어서 진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마치 스위스는 돈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사소한 일에는 안 나타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주고 우리나라는 후덕한 아저씨가 사소한 일은 잘 도와주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망가는 느낌이다.
이러한 스위스 의료 보험 제도는 의사의 체면을 살려 준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으니 환자가 돈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지 않고 진료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리고 스위스에서는 과잉진료가 거의 없다. 병원은 돈을 받지 않는 대신 정부나 보험회사로부터 과잉 진료를 했는지 검사를 받는다. 첫째를 제왕 절개하고 둘째는 자연분만했다고 하면 한국 엄마들은 다들 놀란다. 그게 가능하냐고 말이다. 그러나 스위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첫째를 제왕절개 했는데 둘째는 자연 분만이 가능한가요? 여쭈어 보았더니 “Why not?" 왜 안되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스위스의 의료 체계는 의료인들에게는 과잉 진료를 안 하는 문화를 만들어 놓았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온전히 환자만을 보고 치료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은 사소한 감기는 약을 먹지 않고 집에서 며칠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쉰다. 자연 치유! 스스로 자기 면역을 높여 치료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스위스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약을 먹인 적이 거의 없었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도 배탈이 났다고 해도 큰 질병이 아닌 사소한 질환은 자기 면역으로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열이 나도 콧물을 조금 흘려도 기침을 해도 병원에 가면 무조건 항생제가 잔뜩 들어간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센 약일수록 빨리 낫고 사람들에게 잘 낫게 하는 병원으로 소문이 나 병원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의료 제도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의료인의 문화를 그리고 치료에 대한 철학, 가치관 등 많은 것들을 갈라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