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에서는 헤바매라고 불린다.
스위스에서는 아기를 낳고 10회에 걸쳐 아기가 모유를 먹고 잘 자라고 있는지 점검해 주고 산모를 도와주는 간호사 선생님 방문 서비스가 있다. 남편에게 신청하라고 하니 자기는 바쁘다고 한다. 하아~ 말도 안 통하는데 병원에서 넘겨받은 리스트를 들고 차례차례 전화하기 시작했다. 짧은 독일어로 “나 헤바매.... 원해요..”말을 시작하자 외국인의 어설픈 독일어가 안타까웠을까 수화기 너머로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할게요." 걱정하지 말하는 소리에 안심을 했다.
약속을 정하고 헤바매 선생님을 기다렸다.
첫째 때 모유 수유하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병원에서 퇴원하고도 젖병으로 분유 주지 않고 모유로만 둘째를 키우고 있었는데 젖이 잘 나오지 않는지 밤마다 울고 보채는 아기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헤바매 선생님은 아기 몸무게를 재어 보시고 모유 먹고 잘 크고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모유가 잘 나오기 위해서 산모가 균형 있게 잘 먹어야 한다고 그래도 모유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산양유를 먹어보라고 권해 주셨다.
헤바매 선생님은 흰머리가 힐끗힐끗 보이는 파마머리에 6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나이 지긋하시지만 스위스 사람답게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셨다. 한국에서 스키는 거의 젊은이들만 즐기는 스포츠라면 스위스에서는 공갈 젖꼭지 물고 타는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즐기는 스포츠였다.
막내 동생이 산후 도우미로 와 있긴 했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14일 정도 지났을까 독일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발레 공연이 있다며 여행을 가버리고(평소에는 아기도 잘 돌보아 주고 첫째랑도 잘 놀아주었다.) 남편도 잦은 출장으로 바쁘고 첫째 돌보랴 둘째 젖 먹이랴 식사 준비 등 집안일하랴 하루가 다르게 다크 서클이 내려오고 있는 어느 날 헤바매 선생님이 오셨다. 그날따라 힘들어 보였는지 동생은 어디 갔냐고 물으셨다. 동생도 없고 아이들 돌보느라 너무 힘들다고 헤바매 선생님 앞에서 하소연하며 울고야 말았다.
헤바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엄마도 사람이에요. 너무 하루하루 힘겹게 느껴진다면 분유랑 병행하세요. 잠시라도 아기 맡기고 쉬어요."
첫째는 병원 탓 산후조리원 탓에 100퍼센트 모유 수유를 못하고 분유반 모유 반 했었는데 둘째는 내 모유가 부족한 탓 내가 너무 힘들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며칠 여행하고 동생이 돌아오고 다시 완전 모유 수유에 도전했다. 첫째도 한국인 엄마들 사이에서 원시인 소리를 들으며 24개월 모유 수유를 했었는데 둘째도 큰 보험료 내는 셈 치고 모유 수유를 해주고 싶었다.
헤바매 선생님은 10회의 마지막 날 먼 타향에서 말도 안 통하는 내가 혼자 울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간호사 서비스를 더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신다고 가시는 날까지 안타까워하셨다. 우리는 마지막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그 이후에는 아기를 위해 예방접종할 때 소아과 병원에서 아기의 상태를 체크했고 그래도 궁금한 점이 생기면 동네 아이 엄마 사랑방(파밀리엔 젠트룸)에서 매주 평일 오전 영아 상태 점검 서비스를 하는 시간에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