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수익책이 없어졌어요.”
우리 반 S가 말했다.
그래서
“만원도 안 해. 잃어버렸으면 사와라. “
대충 찾아보던 S가 수익책이 없어지면 사 와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자 서랍이며 사물함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 보이자 사야겠다며 터덜터덜 집에 갔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몇 시간 후 내 책장에서 S의 수익책이 나왔다.
‘에구머니나 범인은 바로 나였네.’
아마 아이들 수익책 검사하고 내 책인 줄 알고 내 책장에 꽂아 둔 모양이었다. 잽싸게 S의 부모님께 문자를 보내고 다음날 수익책이 내 책장에서 나왔음을 시인했다.
“미안하다. 너의 수익책이 내 서랍에 있었어.”
그리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스위스에서 쌍둥이를 임신하고 병원에 갔을 때 모르겠다고 말하던 그 젊은 의사! 그때 나는 생전 처음 의사로부터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이 참 신선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어른이 될수록 왜 좀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일까? 아무리 어른이라도 아이에게 잘 못한 것은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며 수익책을 가져갔던 것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