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기-
동생은 네팔이 좋다고 했다.
네팔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네팔을 다녀오고는 존경심이 들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네팔에서는 못 살 것 같은 느낌이다.
네팔 여행이 어떠할지는 공항에서 이미 가르쳐 주는 듯했다. 카트만두 공항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었는데 흙탕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과연 이 물로 손을 씻으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저히 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손이 오히려 더 더러워질 것 같아 조용히 생수를 뜯어 살짝 씻고 나왔는데 이 흙탕물이 앞으로의 네팔 여행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너 좀 고생하게 될 거야.”라고 말이다. 공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동생을 만나러 왔으니 문을 열고 나갔다. 역시 동생과 현지인 네팔 친구가 있었다.
현지인 친구는 네팔에서 교육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네팔의 오지에서 학교 세우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동생은 네팔에서 발레를 가르치고 있었다. 프랑스인 친구와 같이 스튜디오를 열어 발레를 가르쳤는데 프랑스 친구는 국립발레단에서 일하다 온 발레 전문가였고 동생은 취미로 발레를 배웠웠다. 둘 다 자신의 무대가 네팔에 있다고 했다. 예전에 네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보내주곤 했는데 프랑스 친구도 발레단원으로 주어진 역할을 할 뿐 자신이 기획한 공연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네팔에서는 직접 생각해낸 것들을 무대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동생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발레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는데 프랑스 친구가 기획하는 공연마다 무용수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오래된 단독 주택을 구해 새로운 스튜디오를 열기 위해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다. 돈이 부족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첫째 아들과 팔을 걷어붙이고 페인트 칠을 했다. 첫째 아이와 프랑스 친구가 이야기하면서 깔깔깔 웃는데 무슨 이야기 하나 살짝 엿들어 봤더니 넓은 테라스에 야크 옷걸이를 걸고 반딧불 전등에 춤을 추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른인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꿈꾸는 사람들은 피터팬처럼 동심의 세계에 살며 늙지 않나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늘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두 춤꾼의 삶이
내심 부러웠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심장 떨리게 좋을까?
그것을 알지 못하는 나는
무난 무난하게 살아온 나의 삶이
그들 앞에서 초라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