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년 전쯤 다녀온 네팔 여행기로 그 당시 첫째는 4학년 둘째, 셋째, 넷째는 유치원생이었다.-
부모님께서 친정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막내 동생을 보러 네팔에 가자고 하셨다. (막내 동생은 네팔에 산다) 남편은 직장으로 인해 못 가고 대신 시부모님과 함께 어린 삼둥이(둘째, 셋째, 넷째)를 맡아주기로 했다. 우린 돈을 보내고 평소 한국과 네팔을 오가던 막내 동생이 에어차이나 네팔 항공권을 대신 사주었다. 해외여행 간다는 소식에 들떠서 동생에게 가져갈 선물과 네팔에서 먹을 한국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했다.
인천공항에서 베이징으로 환승해서 하룻밤 자고 가는 항공권이었는데 가격이 싸다는 것 외에 잘 알지 못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베이징도 공항이고 공항에 안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으므로 별다른 준비 없이 비행기에 탔다. 어디까지나 이건 내 생각이고 동생이 끊어준 항공권은 베이징에 저녁에 도착하는 표였다. 늦은 저녁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서 에어차이나 직원이라도 마중 나올 것을 기대했었나 도착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 황당함이란 이제 에어차이나 직원을 이 넓은 공항에서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어 쓰는 직원들도 거의 퇴근하고 공항이 점점 한산해지고 있었다.
늦어질수록 조급해졌다. 일단 비행기가 도착한 건물 안에는 에어차이나 직원들이 없었다. 다른 건물로 넘어가야 하는데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어디쯤 가야 에어차이나 직원을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러 간 사이 친정어머니가 사라지셨다. 밖에 나가서 물어보겠다고 여권도 없이 나가셨다가 못 들어오고 계신 것이었다. (그때 보안이 강화돼서 인지 문마다 짐 검사를 하고 들어오고 있었다)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겨우겨우 무서운 공항 보안 직원을 설득해서 친정어머니를 모셔오고 버스를 찾아 나섰다.
버스 아저씨는 중국어만 할 줄 아셨다. 결국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가는데 첫째가 우리 이러다가 공항에서 자는 거냐며 울먹거린다. 에효! 직원이 800m 앞에 있는 건물로 가라고 했는데 온갖 짐을 이고 지고 온 가족의 원망을 들으며 가는 800m가 멀고도 멀어 보였다. 준비 좀 철저히 할걸! 이럴 줄 알았나!
다른 건물로 가니 에어차이나 직원들이 깜짝 놀란다. 1시간 넘게 헤매면서 고생했다고 하니 우리를 안심시키며 곧 버스를 준비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에어차이나에서 준비한 호텔로 왔다.
저녁을 못 먹고 도착한 호텔에는 식당이 없었다. 식당을 알아오라는 부모님 말씀에 호텔 주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에 가니 신용카드가 안 된다고 한다. 중국돈이 있어야 계산할 수 있다니 이렇게 늦은 저녁에 어떻게 중국돈을 구한담! 오늘 저녁은 이대로 굶어야겠구나 포기할 때쯤 반가운 한국말이 들린다. 식당 한쪽에 중년의 한국인 남자 2분이 식사하고 계셨다. 크지 않은 식당에 그 팀과 우리 두 팀밖에 없어 엿들으셨는지 한국돈을 중국돈과 바꾸어 주신다고 하셨다. 아니 이런 행운이! 입맛이 안 맞을 것 같은 황비홍 아저씨(윗머리는 대머리에 딱 절반부터 시작된 땋은 머리를 한 식당 주방장) 음식 솜씨는 기대보다 꽤 좋았다. 음식을 싹 비우고 공항에서의 어리바리함을 잊고 씻고 잤다. 새벽에 일어나야 했으므로…
네팔 가면 이 동생을 가만 두지 않을 테다.
부모님 모시고 가는 여행인데 이런 티켓을 보내다니 벼르고 벼르며 네팔로 갔다.
그렇지만
고생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는다.
바로 어제 겪은 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