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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쌤 Nov 25. 2022

어린 시절의 명절

며칠 전 큰어머니 장례식장에 갔었다. 어린 시절 명절이면 큰집에 가곤 했는데 그럴 때면 큰어머니는 음식을 하나 가득해서 우릴 맞아 주셨다. 그러나 사실 우리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묘한 싸움이 시작되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어린 시절이었지만 시댁은 편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큰집에 갈 때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꾸중에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왔는데 큰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질 때면 괜스레 우리 어머니 걱정이 들곤 했다. 그러나 그런 말에 의기소침할 우리 어머니도 아니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화끈하게 큰어머니와 우리 어머니와 한 판 붙은 그날! 우리는(어머니와 세 자매) 큰 집을 나와 어머니의 친정 큰외삼촌 댁에 갔다. 명절에 외갓집에 가는 것은 그 당시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명절은 언제나 오랫만에 또래의 사촌을 만나 노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불편함이 늘 공존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던 명절이 클로즈업되면서 큰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간 날! 그래도 나의 어린 시절에 큰집에 모여 앉아 함께 이야기 나누는 즐거운 추억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불편한 마음도 다 잊었노라고 편하게 가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차! 옛날의 불편함과 동시에 사촌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명절이 끝날 때면 나는 헤어지기 아쉬워 작은 집 사촌들과 어떻게든 더 놀려고 했다. 작은 집은 나와 한두 살 차이가 나는 언니와 친구(남), 동생(여)이 있었다. 물고 늘어지는 나를 어쩔 수 없이 맞아주셨던 작은 어머니 덕분에 작은 집에 놀러 가곤 했다. 작은 어머니는 몸이 좀 안 좋으셨음에도 나와 언니를 작은 집에서 늘 놀게 해 주셨다. 그렇게 놀러 간 작은 집에서 아이들 5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우리들의 끈질긴 부탁에 하룻밤 작은 집에서 자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작은 집 식구들은 구멍 난 내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자린고비 어머니 덕분에 나의 내복은 무릎이며 팔꿈치며 구멍이 숭숭 나 있었는데 작은 어머니는 나의 구멍 난 내복을 보시고 한바탕 웃으시더니 깨끗한 (구멍이 나지 않은) 내복을 꺼내 주셨다.


그리고 작은 집 식구들은 우리 집과 다른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자기 전에 부모님께 쪼르르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을 자러 가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오랜만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장기자랑처럼 돌아가며 노래도 부르고 잠을 자러 갔었는데 작은 집의 이런 문화가 좋아 보였다.


작은 집 언니, 친구, 동생은 모두 어른이 되어 자기의 앞길을 잘 찾아갔다. 중년이 되어 마주 앉은 우리는 옛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이들 키우며 사는 그간의 소식도 나누고  아이들 사진도 구경하며 아이 없이 사는 친구(동갑) 회사 생활 이야기도 들었다. 옆에 계신 작은 어머니께도 작은 집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어린 시절 철없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명절은 단 맛과 쓴 맛!

늘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인생임을

미리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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