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의 홍콩 연대 활동을 정리한 글입니다. 지속적으로 관련 내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1
1980년 5월 27일을 기억합니다. 그날, 많은 광주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남도청에 남았습니다. 잠시 뒤, 군대가 광주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3시, 도청 방송실에서 마지막 방송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나오셔서 학생들을 살려주세요."
방송이 끝난 직후, 도청항쟁지도부 이양현 기획위원이 도청 전기를 내렸습니다. 잠시 후 M-16 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입했습니다. 5.18, 10일간 이어진 처절했던 항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이들이 있었기에, 광주의 외침에 응답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세계가 광주의 부름에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택시운전사'와 함께 광주에 간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목숨을 걸고 광주의 사진과 영상을 독일로 보냈습니다. 독일 공영방송 9시 뉴스에 보도된 광주의 생생한 진실은 다음날 오전 미국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분노한 교민들과 미국인들은 광주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독일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18 직후 일본 도쿄에서는 수만 명의 일본인들이 광주에서의 학살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광주의 소식을 접한 일본의 인권작가 도미야마 다에코는 눈물을 흘리며 광주를 그렸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1980년, 광주는 타자의 고통에 응답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40년은 세계가 광주의 고통에 응답한 역사였습니다.
2019년, 우리들은 바다 건너 홍콩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광주의 핏빛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홍콩은 또 다른 광주였습니다. 보고 듣고 배워온 오월 광주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홍콩에 연대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3월에 돌아보는 광주의 홍콩 민주화운동 연대 기록입니다.
#2. 광주 - 홍콩 연대 일지
1. 홍콩시민들과 함께하는 광주시민사회 기자회견 (2019.10.25)
광주의 첫 홍콩 연대는 '홍콩시민들과 함께하는 광주시민사회 기자회견'이었다. 해당 기자회견은 '광주인권회의'에 의해 추진되었다. 광주 시민사회가 홍콩의 인권 현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광주인권회의는 홍콩 활동가들을 광주로 초청하여 강연회를 진행할 계획을 수립했다.
2. 전남대학교 인문대 쪽문 대자보 게시 (2019.11.14)
2019년 11월 중순 경, 전국 대학가에 '레논 월(Lennon wall)'과 홍콩 지지 대자보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2019년 11월 14일 전남대학교에서도 인문대학 재학생이 전남대 인문대 김남주 기념홀 뒤편에 위치한 쪽문에 대자보를 부착했다. 해당 대자보는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자'라는 제목이었다. 해당 대자보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홍콩 폭동의 본질은 테러리즘'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었다. 이 역시 같은 날 재학생들에 의해 철거되었다.
3. 전남대학교 및 금남로 현수막 게시 (2019.11.14)
2019년 11월 14일, 5.18민주광장과 전남대학교에 홍콩시위 지지를 표명하는 현수막 4장을 게시했다. 현수막을 게시한 본인으로서 말하자면, 당시에는 별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홍콩시위 지지를 표명하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현수막을 디자인한 후 인쇄업체를 통해 인쇄했다. 총 6장의 현수막을 인쇄한 후 광주청년유니온 정회민 정책팀장과 함께 앞서 언급한 두 곳에 4장을 게시했다. 현수막을 게시한 직후 사진을 촬영하여 SNS에도 공유했다.
4. 전남대학교 인문대 쪽문 레논 월 및 현수막 설치 (2019.11.15)
다음날, SNS에 게시된 홍콩시위 지지 현수막 사진을 보고 이재갑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본인을 광주에서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소개한 후 '레논 월'을 설치하고 싶다며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나는 광주청년유니온의 박형민, 정회민 조합원과 함께 그를 만났다. 우리 네 사람은 전남대 인문대 김남주 기념홀 뒤편에 레논 월을 설치했다. 어제 5.18민주광장 등에 게시한 후 남은 현수막 2장도 함께 게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 유학생 20여 명과 충돌이 있었다. 김설, 황법량에게 현장에 와줄 것을 요청했고, 한동안 대치가 이어졌다.
5. 홍콩시위 관심 촉구 퍼포먼스 (2019.11.17)
2019년 11월 17일, 전남대 사학과 윤동현씨가 시청, 광천터미널, 5.18 민주광장 등에서 홍콩시위와 관련된 문구가 적혀있는 우산을 펼쳐두고 1인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6. 현수막, 레논 월 훼손 및 박물관 기증 (2019.11.22)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 뒤편에 게시된 현수막과 레논 월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훼손되었다. "누군가가 날카로운 커터 칼로 현수막을 찢어버렸다"는 목격담이 전해졌다. 이에 지난 11월 15일에 함께 '벽보를 지켰던 사람들'이 모여 찢어진 현수막과 훼손된 대자보를 회수하였으며, 이를 광주가 홍콩에 연대했고 그 표현의 자유가 도전받았다는 증거로써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7. 홍콩민주시민들, 광주인권상 후보로 추천 (2019.11.28)
2019년 11월 29일, 광주인권회의,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정의당 광주광역시당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시민'을 2020년도 광주인권상 후보로 추천했다. '광주인권상'은 5.18기념재단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뚜렷하게 공헌한 개인 및 단체에게 시상하는 상으로, 매년 5월 18일에 시상식이 진행된다.
8. 홍콩 활동가 초청 강연회 (2019.12.10)
2019년 12월 10일, 전남대학교 이을호 강의실에서 홍콩 활동가 초청 강연회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총영사 측의 압력으로 학교 측이 대관 취소를 결정했으며, 결국 강연은 광주YMCA에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병석 전남대 총장이 인문대학 학장에게 "총영사 측 항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대관 취소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강연을 주최한 광주인권회의 측은 강연 진행에 앞서 전남대학교와 중국 총영사 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9. 광주홍콩연대회의 홍콩 방문 (2020.02.07~2020.02.10)
2020년 2월 초, 광주홍콩연대회의가 홍콩을 방문했다. '광주홍콩연대회의'는 지난해 11월 15일에 있었던 전남대 '레논 월'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들은 데모시스토, HKCTU(홍콩 직공회 연맹), 토지정의연맹 등과 간담회를 가졌고, 홍콩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류회도 진행했다. 많은 홍콩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2020년 5월 광주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 5.18 40주년 홍콩 연대 펀딩 진행
2020년 3월, 광주홍콩연대회의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행사 - 홍콩 연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행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펀딩을 받아, '광주홍콩연대뱃지'와 '티셔츠'를 나눌 계획이었다. (펀딩 링크) 그러나 해당 펀딩은 2020년 4월 19일 무산되었으며,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따라 5.18 40주년 홍콩 연대 프로젝트 역시 불발되었다. 당시 광주홍콩연대회의가 준비했던 홍콩 연대 프로젝트는 아래와 같았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행사 - 홍콩 연대 프로젝트>
#1. 홍콩시민 대상 5.18 사적지 설명 및 묘역 참배
광주를 방문하는 홍콩 시민들에게 사전 신청을 받아 5.18 사적지 탐방 및 5.18 묘역 참배 동행 광둥어 통역사를 지원한다.
#2. 홍콩시민과 함께하는 간담회/집담회
5.18 당사자 및 광주지역 활동가들과 홍콩시민들의 간담회/집담회를 준비한다. 홍콩시민들과 광주시민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3. 민주대행진 및 전야제 참석
홍콩시민들과 함께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금남로까지 행진한다. 홍콩항쟁에 대한 구호를 담은 피켓과 현수막, 깃발 등을 준비하여 참석자들에게 지급하고 한국 시민사회 각 단위에 참석을 제안한다. 행진 이후 5.18 민중항쟁 40주년 전야제에 참석한다.
11. 5.18 40주년, 홍콩시민들이 보내온 연대의 메시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홍콩시민들이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 메시지들은 홍콩 활동가들이 수집해 광주홍콩연대회의에 전달한 것으로, 홍콩시민 24명이 남긴 메시지와 직접 촬영한 영상 3편, 일러스트 2장 등이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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