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동규 Mar 31. 2020

전남대, '레논 월'을 둘러싼 충돌

홍콩 시위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자

 2019년 11월 14일, 전남대학교 김남주 기념홀 뒤편에 '홍콩 시위' 지지를 표명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홍콩 시위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 대자보는 불과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대자보를 강제로 철거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 "홍콩 폭동의 본질은 테러리즘", "우리나라 일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였다.


 같은 날, 나는 5.18 민주광장과 전남대학교에 '홍콩 시위' 지지를 표명하는 현수막 4장을 게시했다. 홍콩시민들의 투쟁에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수막을 직접 디자인한 후, 인쇄업체를 통해 인쇄했다. 이후 함께 활동하던 광주청년유니온 정회민 정책팀장과 함께 앞서 언급한 장소에 현수막을 게시했다. 현수막을 게시한 직후에는 사진을 촬영하여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에 포스팅했다. 우리는 조선대학교, 광천터미널 등지에도 추가적으로 현수막을 게시할 생각이었지만, 일정상 다음날로 미루고 귀가했다. 그날 밤,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을 보고 이재갑이라는 청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홍콩 연대를 위해 '레논 월'을 설치하고자 한다"며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다음날, 나는 광주청년유니온 조합원 정회민, 박형민 두 사람과 함께 이재갑을 만났다. 우리들은 '레논 월' 설치에 대해 논의했다. 처음에는 광천터미널에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어제 전남대에 게시된 대자보가 강제로 철거된 일을 상기하며,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 뒤편에 '레논 월'을 게시하기로 뜻을 모았다. 오후 2시경, 우리는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 뒤편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벽에 전지 두 장을 붙였고, 인쇄해온 '레논 월' 관련 내용을 게시했다. 어제 미처 게시하지 못한 현수막 2장도 근처에 걸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중국인 유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20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네 사람에 불과했던 우리들에게, 이것은 큰 위협이었다. 우리는 '레논 월' 설치를 마친 후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포스트잇에 홍콩 관련 문구를 적어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점차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씨발새끼야 너 돈 얼마 받았니"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레논 월'에 침을 뱉었다. 결국 상황은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악화되었다. 우리는 급히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에 와줄 것을 요청했다. 잠시 후 김설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과 황법량 학벌 없는 사회 상임 활동가가 현장에 왔다. 우리 여섯 명은 중국인 유학생들과 대치를 이어나갔다. 우리들은 레논 월을 지켜야 했고, 그들은 그 벽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전남대 학생처 관계자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 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법한 거리에서 언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 유학생이 '레논 월'을 막아서자 황법량이 천안문 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학생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말렸다. 이에 황법량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 물러나라! 홍콩 경찰 물러나라! 폭력진압 중단하라! 민주주의 수호하자!"


 그가 큰 소리로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치자, 유학생들은 잠시 자리를 피했다. 그는 거기에 대고 "여기는 민주주의의 성지 전남대요"라고 외쳤다. 현장에 도착한 학교 관계자들이 유학생들을 인계하여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시도했다. 이날, '레논 월'을 둘러싼 충돌은 오후 7시까지 4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우리 중 몇 사람은 레논 월을 지켰고, 다른 몇 사람은 그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본래,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에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논쟁을 진행한 후, 전남대학교 총유학생회장이 본인들의 사무실에 가서 대화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나에게 나이를 물었고, 이내 나를 '형'이라 불렀다. 나와 이재갑 두 사람은 그들을 따라 전남대학교 총유학생회실로 이동했다. 



 우리는 전남대학교 총유학생회실에서 5:2로 논쟁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들에게 헌법에 의해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우리들의 행위가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홍콩 시위가 얼마나 잘못되었고, 폭력적인 것인지 이야기할 뿐이었다. 여러 차례 고성이 오갔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당신 죽이면 천당 간다고 생각해서 죽여버릴 수 있다"며 "밤길 조심하라"고 위협했다. 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사람을 노려봤다. 곧 대화는 결렬되었다. 총유학생회실을 나와 레논 월이 있던 장소로 돌아가 보니, 일행들이 남아있었다. 이미 중국인 유학생들은 현장을 떠난 상황이었다. 우리들은 레논 월과 현수막 2장이 무사함을 확인하고 귀가했다.



 다음날인 2019년 11월 16일, 우리는 현수막 2장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군가 날카로운 커터칼로 현수막을 찢어버렸다" 우리에게 전해진 유일한 목격담이었다. 2019년 11월 17일, 우리는 찢어진 현수막 2장을 회수하고, 새것으로 교체했다. '레논 월'은 그다음 날인 18일까지 유지됐다. 그동안 여러 학생들이 레논 월에 홍콩을 지지한다는 문구를 적었다. 따로 인쇄해온 A4 용지를 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입닥쳐", "알지도 못하면서 뭘 지지해!"와 같은 문구도 있었다. 2019년 11월 18일, 누군가가 '레논 월'을 벽에서 떼어낸 후, 바닥에 던져두었다. 우리들은 바닥에 방치된 '레논 월'을 회수했다. 이로써,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 뒤편에서 진행된 '레논 월'을 둘러싼 충돌은 일단락되었다.


-- 이전 글 -- 다음 글 --

이전 01화 오월 광주, 홍콩에 연대하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광주홍콩연대 활동기록집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