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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Dec 18. 2020

문화수도 광주는 끔찍한 무능의 소산이다

 광주가 예로부터 '예향', '의향', '미향'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나는 광주에서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이곳의 문화적 '탁월성'을 느껴보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수식어는 평범한 개인들의 일상에서는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인적 감상이 정책으로 연결되어 끔찍한 결과를 낳고 있는 곳이 또한 광주이기도 하다.


 '문화수도 광주'의 기원을 살펴보자.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본인의 공약 사항으로 '문화수도 광주'를 채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알면 과연 그것이 그의 뜻이었는지에는 의문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문화수도' 공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문화수도 광주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2002년 12월 14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광주에 방문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22일 중 유일한 광주 방문이었다. 대통령 선거는 난잡한 전쟁이다. 애초에 계획대로 진행될 수 없는 구조다. 노 후보의 광주행은 방문 전날 결정되었다. 14일 노 후보는 양동시장에서 국밥을 먹고 광주공원에서 유세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동시장에서 광주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차량으로 5분 거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광주공원으로 출발한 노 후보의 버스가 중간 지점에 멈춰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유세 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작전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버스에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강운태 광주시당위원장, 천용택 전남도당위원장, 정동채 후보 비서실장이 있었다. 호남 정치인들은 노 후보에게 '문화수도 광주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한때 이 도시의 설계자였던 그들은 '문화'를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고자 했다. 산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무지의 소산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핵심 공약은 '행정수도 세종'이었다. 노무현은 "광주는 예로부터 예향, 의향, 미향으로 불려 왔으니 문화수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들의 제안을 듣고 광주공원 유세에서 "세종을 행정수도로 광주를 문화수도로 하겠다"고 즉흥 연설했다. 물론 그는 해당 연설 직후 창원 유세를 위해 곧바로 광주를 떠났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5일 앞둔 노 후보는 해당 연설 내용을 기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후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국정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인수위 시절 '문화수도 광주'는 단 한차례도 검토되지 않았다. 애당초 노 대통령의 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노 대통령의 '광주 공약'에는 아주 익숙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5.18 당시 시민들이 최후까지 항전을 벌였던 구 전남도청 부지에 '518m 민주·인권' 타워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이다.


 2003년 5월 18일 대통령 자격으로 광주에 방문한 노무현은 5·18 기념식 직후 전남대학교에서 진행한 특강에서 5·18 최후의 항전지인 구 전남도청 자리에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퐁피두 센터와 같은 문화센터를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의 518m 타워 건설 계획은 '아시아 문화전당' 건설로 구체화되었다. 필자는 '문화수도 광주'의 기원 이야기를 해주신 분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광주에 와서 "5·18 최후의 항전지에 퐁피두 센터와 같은 문화센터를 건설하겠다"고 이야기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2005년, 민주당 손재홍 광주시의원이 아시아문화전당 건설에 반대하며 518m 타워 건설을 다시금 주장했다. 그는 "5·18 타워가 광주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 것"이라며 "아무 의미 없는 프랑스 에펠탑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5·18 타워는 단연코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의원은 "문화전당은 광주에 경제적 효과를 주기 어렵고 자칫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체성 없이 추진되는 사업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518m 타워에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라는 손 의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정체성 없이 추진되는 사업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주장에는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의 공언 이후 아시아문화전당 조성 사업에 총 7,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5·18 최후의 항전지였던 구 전남도청 별관 건물 54m 중 24m 부분은 허물어졌다. 그러나 2019년 정부가 '구 전남도청'을 다시 원형으로 돌려놓겠다며 복원안을 발표했다. 향후 진행될 복원 공사에는 총 3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된다.


 그 사이 '문화수도 광주' 구호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변모했다. 문화'수도'란 한 국가의 문화 중심지를 일컫는 말로써 애초에 현실 가능성 없는 주장이었다. 대한민국의 문화수도는 서울이다. 나는 지금껏 5·18 묘역을 찾아 광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지만,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20년 아시아문화전당은 수익을 내기는커녕 관리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애물단지가 되었다. 대표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문화전당에는 매년 5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전당에 채용된 정규직 직원은 수백 명에 불과하다. 2018년 광주시는 다시 한번 '문화'를 꺼내 들었다. 향후 5년간 3조 9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문화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옛 설계자들이 내세운 미래 먹거리 '문화'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광주에 좋은 먹거리, 좋은 전통과 같은 문화들이 있어온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번영을 창조해낼 수 있는 기술과 기반은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광주가 앞으로 쏟아낼 예산들은 문화'산업'이 아닌 관변 문화단체의 성장으로 귀결될 것이다.


 행정은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이다. 그런 행정이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아닌 시 주도의 문화산업 육성을 내세우고 있으니,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질문해보자. "3조 9천억 원의 예산을 다 사용한 이후, '문화산업'은 광주 GDP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게 될까?"


 지금껏 사용된 엄청난 예산들의 결과를 보라.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해낼 수 있었던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문화도시' 광주 구호는 끔찍한 무능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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