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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Apr 14. 2021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이상호 작가의 '광주정신' 비판

3관 욕망 어린 신체, 분과적 경계 너머

 지난 4월 10일 지인들과 함께 제13회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했다. '비엔날레'란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으로 2년에 한 번 열리는 전시회를 뜻한다. 국내에서는 1995년부터 광주비엔날레가 열려왔다. 초창기에는 김영삼 정권의 광주 민심 수습책 성격이 있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표어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다. 전시관에 들어가서 큐피커 어플을 켜고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했다. '예술 전시'에 걸맞게 상당한 깊이를 지닌 작품들이 있었다. 설명을 듣기 전 곰곰이 생각해본 후 설명을 듣자 마음속에서 절로 효과음이 나오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 같은 마음은 3관에 들어간 직후 산산조각 났다.


 설명을 듣기도 전에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작품 코너가 있었다. 이상호 작가의 '광주정신' 코너였다. 그러나 그곳에 광주정신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아집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인간의 자화상이었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작품은 성조기가 광주를 짓밟고 있는 그림이었다. "광주학살 주범은 미국"이라던 NL 정파의 주장과 일맥상통했다. 그러나 다른 전시실에 있던 작품들이 추상적이며 깊은 가치들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담아낸 데 비해, 이 작품은 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상 "미국 놈들 나쁘다"라고 쓰여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호의 '광주정신'은 특정 생각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나쁜 작품이다. 문득, 북한의 선전 방송이 떠올랐다. 김관진과 미군의 사진을 세워두고 아이들로 하여금 파괴를 유도하는 장면이었다. 이와 같은 수준의 작품이 광주비엔날레 전시실에 버젓이 걸렸다는 현실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 광주정신(이상호 작가/왼쪽), 북한 선전방송 갈무리(오른쪽)


 가장 용납할 수 없는 지점은, 이상호 작가가 감히 이 작품의 제목을 '광주정신'이라 명명했다는 데 있다. 5·18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위해 일어난 시민항쟁이었다. 광주정신의 핵심은 1980년 5월 27일 새벽의 도청을 죽음으로써 사수한 시민들의 긍지와 주체성에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광주정신의 핵심을 '미국에 의한 피해'로 해석했다.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한 일'을 '외세에 의해 수동적으로 당한 일'로 축소한 것이다. 이로써 광주정신이 본래 내포하고 있는 가치인 '주체성'이 '피해자성'이 되었다.


 우선, 5·18 이후 '미국 책임론'이 핵심적 문제로 다루어졌던 건 사실이다. 1980년 당시 미국은 한국군의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단,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에 대한 작전권은 미국이 아닌 신군부에 있었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움직였다. 광주의 저항이 거세지자 신군부는 경기도 양평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을 광주로 증파했다.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 군부의 움직임으로 휴전선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부산항에 항공모함을 파견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의 항모 파견 소식을 들은 광주시민들은 "민주우방의 도움으로 이 사태가 해결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한국이 그러하듯, 모든 국가는 스스로의 이익에 충실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한국에 상주하고 있던 CIA 관계자들이 집권 후반기의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서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에서의 폭력은 미국이 아닌 전두환과 신군부가 '본인들을' 위해 자행한 폭력이다. 여기에 대해 "왜 알고도 도와주지 않았나?" 혹은 "왜 방임했나?"라는 질문은 가능하다. 그러나, "광주학살 주범은 미국"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1987년 조선대 졸업반이었던 이상호 작가 세대가 광범위하게 수용한 NL 정파의 구호에 불과하다.


 광주의 폭력은 외주 받지 않은 폭력이었다. 즉 미국이 소망한 폭력을 전두환 군부가 대신 자행해준 것이 아니라, 전두환 군부 스스로가 본인들의 권력 장악을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A(신군부)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B(광주)에 부당한 폭력을 행사했다. A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C(미국)는 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B는 A의 부당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B는 비록 졌지만, 어떤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B의 위대한 투지(광주정신)'에 있다. 그러나 이상호 작가를 비롯한 일부는 "B를 다치게 한 건 C"라고 외친다. C가 B를 짓밟고 있는 그림도 그린다. "왜 도와줄 수 있었으면서 도와주지 않았냐, 당신들 때문이다"라는, 굴욕적인 논리다. 실제로 군사개입 등을 통해 개입했다면 그것은 내정간섭이다.


 "광주학살 주범은 미국"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지금 현재 미얀마에 한국군을 파견하여 미얀마 군부를 제압하지 않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미얀마 학살의 주범"이라는 논리 역시 성립한다. 이상호 작가의 '광주정신'은 광주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전개한 위대한 투쟁을 폄하한 하찮은 작품이다. 5·18 직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김준태 시인은 광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 광주여. 쓰러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출처 : 전남일보 유튜브 채널


 다음으로 이상호 작가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봤다. 친일반민족행위자 92명이 포승줄에 묶여있는 작품이었다. 누가 봐도 선명한 '선악구도'가 같잖은 화폭 위에 놓여있었다. "이 사람들 나빠요"라고 쓰여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시절 제국에 협력한 이들은 분명히 단죄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현대미술 전시회인 광주 비엔날레에서 제국 협력자들이 포승줄에 묶여있는 뻔한 응징의 구도를 보고, 우리는 대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대로 "저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일까. 나는 198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사고방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의 시선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관 주제는 "욕망 어린 신체, 분과적 경계 너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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