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열린 TV토론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재선에 도전한 레이건의 나이 문제가 거론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밤을 새가며 일했는데, 지금 이 순간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인 당신에게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레이건은 웃으면서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이어 "저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 이슈를 거론할 생각이 없다. 저는 제 경쟁자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좌중에서 폭소가 나왔고, 경쟁자인 민주당의 먼데일 후보조차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후 레이건은 1984년 대선에서 역사적인 압승을 거둬 재선 대통령이 됐다. 레이건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고, 유머와 폼으로서 자신이 승자임을 어필했다.
그러나 그는 1981년 취임 직후 있었던 저격 사건 탓에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산소통을 끼고 살았고, 국무회의에서 졸거나 훗날 확진받은 알츠하이머의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8년 임기를 소화한 점은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보여주기'에 실패했다. 평소 상황과 별개로, 바이든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3년 7개월 터울이기 때문에 둘의 나이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번 토론에서 폼과 딕션, 에너지에서 완벽하게 졌다. 안 그래도 밀리고 있었는데 패배가 굳혀졌다. 9월에 있을 다음 토론 때까지 내부적 혼선이 이어질 것이며, <뉴욕타임즈>마저 후보 교체를 거론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4년 전 바이든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한 분석 모델을 1만 회 이상 돌려 이번 대선 결과를 예측해 봤다. 트럼프가 66% 확률로 승리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조사는 이번 토론 전에 진행된 조사다. 토론 직후 각종 베팅 사이트에서도 바이든의 당선 확률이 폭락하고 트럼프 당선 확률은 폭등했으니, 바이든으로 이기는 건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여든 하나에 재선 도전이라니,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린드 B. 존슨처럼 재선 도전을 겸허히 포기하고 권력을 내려 놓았다면 트럼프를 막을 후보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존슨은 케네디의 남은 임기를 승계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완벽한 단선 대통령은 아니었다. 바이든은 4년 재임한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재선을 포기한 사례가 되기 싫었을 것이다.
지미 카터처럼 싸워보기라도 한 것인데, 결국은 트럼프에게 징검다리 재선을 허용하고 '4년 대통령'으로서 그곳을 떠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차라리 멋지게 내려놓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면 4년 대통령임에도 존중받았을 것이다. 바이든 캠프는 토론 직후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당 고위 인사들은 앞다투어 후보 교체론을 일축했다.
외부의 힘으로 후보 교체를 이루긴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즈>의 지적처럼, 그의 마지막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이 승리할 길은 딱 하나다. 8월에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재선 도전 포기를 선언하며 인간의 한계를 언급하는 것이다.
"여러분, 저는 여기서 멈추지만 우리의 여정은 결코 한 사람을 위한 일도, 하나의 선거를 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라고 한 후 후보직 지명을 사양하고 새로운 후보 지목과 함께 그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근데, 선거가 11월 초라 이렇게 해도 승리에 대한 확신은 없을 것 같다. 그나마 교체 투입돼 이길 만한 인물은 미셸 오바마 정도일 것이다. 지난해 말,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밀리자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이 "미셸이 낙하산 영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 급속도로 결집할 것이다. 그의 출마는 공화당에 가장 위험하다"고 한 일이 있었다.
미국의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해리스 부통령, 개빈 뉴섬 CA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모두 제쳤지만 미셸 오바마에게는 밀렸다. 바이든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실은 여기 있다. 만약 부통령인 해리스의 지지율이 트럼프보다 높았다면, 혹은 민주당의 다른 주자들의 지지율이 트럼프보다 높았다면 바이든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셸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은 트럼프에게 뒤졌고, 그나마 이길 수 있던 게 현직인 바이든이었다.
바이든인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7번 승리한 노련한 정치인으로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으로 재직했던 거물이다. 그러나 그의 승리가 그리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미셸이 그나마 승리 카드로 보이는데 트럼프가 이번에 당선될 경우 2029년 1월 20일까지 재임해 이 행성 곳곳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일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인생을 살며 겸허를 알고 내려 놓는 일 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좀 더 일찍 내려 놓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정치적 가능성이 열려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