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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pr 20. 2022

구덩이

구덩이를 바라보는 어른과 아이의 시점

<다니카와 슌타로 글/와다 마코토 그림>

구덩이라는 그림책을 보았다. 구덩이를 보고 있자니 내 구덩이가 떠올랐다. 내 인생의 구덩이 말이다. 내가 판 구덩이, 누군가로 인해 파게 된 구덩이, 파는지도 모르고 팠던 구덩이 등. 구덩이를 파게 된 연유와 더불어 그 구덩이안에 과연 무엇이 담겨있는지도 궁금했고 그 구덩이안에서 난 무엇을 했는지 그 구덩이를 지켜만 봤는지에 대한 질문도 떠올랐다.


내 인생의 구덩이는 대부분 나 스스로 파고 든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움직이기 보다 스스로 원하고 스스로 시동이 걸려야 일을 벌이는 성격답게 내 인생의 모든 구덩이들은 자발적 구덩이들이다. 그림책 주인공 히로처럼 말이다.


히로는 일요일 아침, 할일이 없어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자기 스스로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구덩이를 파는 것이지만 구덩이를 파는 행위 속에는 스스로에 대한 탐구가 분명 숨어있다. 구덩이를 파는 행위는 무언가 알고 싶고 알아야만 하고 끝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작용한다. 보통 구덩이를 파볼까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만 하고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수없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알고 싶고 보고 싶으면 구덩이를 파야만 한다. 가장 좋은 건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를 확인하고 그 구덩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 그만인 것이다. 주인공 히로처럼 말이다.


처음 그림책을 보고난 후 왜 기껏 판 구덩이를 다시 막아버릴까 궁금했는데 그림책을 두번보고 세번보고 이 그림책을 여러사람과 함께 나누다보니 답이 보였다. 구덩이를 파는 동안 이미 답을 찾은 거다. 그렇기에 구덩이에 대한 미련없이 메워버릴 수 있었던 거다. 구덩이를 파는 행위는 수단이었을 뿐 그 구덩이를 파는 동안 히로는 이미 답을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구덩이를 파지 않으면 절대 모를 것을 말이다.


인생은 해서 후회보다 안하고 후회하며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런 의미에서 구덩이는 파고파고 또 파고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구덩이를 파는 시간이 필요하다. 히로는 구덩이를 파는 동안 여러 사람으로부터 간섭의 시선을 받는다. 뭐하냐고 묻는 엄마,같이 파고 싶다고 하는 동생, 구덩이로 뭐하려고 하느냐는 친구까지, 반면 아빠는 히로의 구덩이 파는 일에 대해 묵묵하게 한마디 던진다.


"서두르지 마라, 서둘면 안 된다." 그리고 구덩이를 다 판 후에는 "꽤 멋진 구덩이가 됐는걸"하신다.


히로에게는 구덩이를 왜 파는지에 대한 물음도 같이 파자고 할 동지도 그 구덩이로 무언가를 할 목적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구덩이를 파고 파봄으로 스스로에 대한 사실을 느끼고 알고 결론지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정의 한마디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구덩이를 파는 것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같이 팔 필요도 없고 그 구덩이를 함께 나눌 필요도 없다. 나를 알고 나를 깨우치는 건 나 스스로 구덩이를 팔 때만이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히로 아빠처럼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아이에게 그저 인정과 칭찬의 한마디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게 알을 깨고 나온 히로 존재감에 대한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덩이라는 그림책은 다양한 시각이 가능하다. 그림책 그대로 아이 시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고 내가 처음 그림책을 본 것 처럼 내 인생의 구덩이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다. 혼자 이 그림책을 봤다면 인생의 구덩이에 대한 부분만 생각했을텐데 마침 11살 딸이 이 그림책을 보고난후 감상문을 써서 보여주면서 또 다른 시선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11살 딸의 감상문



내 인생이 오롯이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속에 빠져보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 그 시간은 웅크림의 시간이지만 한편으로 날개를 활짝 펴기 위한 준비시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20대 굴속에 갇혀 웅크리고 지낸 시간이 그 이후의 날개를 펼치는 자양분이 되었기에 그 시간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 시간의 필요성에 대한 분명함을 지금은 안다. 자발적 구덩이는 인생의 한단계 전진을 위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커가는 과정속에 구덩이를 파는 시간은 반드시 초래한다. 그 구덩이를 파는 동안 지켜볼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 어른만 곁에 있다면 말이다.


자라고 있는 아이도 인정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어른도 누군가 지벼봐주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라나는 아이는 부모의 믿음을 먹고 자라고 어른은 누군가 믿고 인정해주는 그 한마디에 인생이 살만해진다.


부모라면 내 아이에게 믿음의 안전지대가 되어주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자.

다 자란 어른이라면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줄 단 한사람이 누구인지 또 내가 그 누군가에게 단 한사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은 구덩이다.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고 구덩이에서 아파할때 스스로 깨고 나오는 애쓰또 필요하지만 그 애씀을 믿고 바라봐줄 누군가도 분명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구덩이가 구덩이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림책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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