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진주서평 14화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by 진주


이 책을 구입한건 2021년 1월 어느날입니다. 핸드폰이 더 이상 재구실을 하지 못해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 중 하나인 핸드폰을 바꾸고 기존 핸드폰에 있던 데이터를 옮기는 시간동안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난거죠. 이 기억을 또렷하게 가지고 있는건 책을 사자마자 앞장에 메모를 했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이 없으니 사진도 찍지 못하고 할 것도 없으니 끄적이게 되더라구요. 책은 정작 몇장 안 읽고 끄적이기만 하다 집에 와서 이 책은 책장에 꼭 숨어버립니다.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된 건 우연이었습니다. 가정사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사놓고 완독을 하지 못했으니 한번 읽어보자 하고 펴보고는 단숨에 읽어 내려 갔습니다. 책은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마주하게 된다는 것 아시나요?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내가 인생의 정답이라고 여기는 답이 아닌 해설지 같은 것이 필요했는데 저에게 이 책이 딱 그랬던거죠.



세상에서 가장 힘든 관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통 가족이라고 하지요. 핏줄로 맺어진 혈육이니깐요. 저는 그것보다 더한 관계가 부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부는 혈연이 아닌 관계로 맺어졌지만 혈연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함께 하니 말입니다. 부부는 남이자 부부는 남이 될 수 없는 가장 어렵고 복잡한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책을 다시 읽게 된 연유가 남편을 이해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라는 것이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보다 성숙한 이들의 문장을 빌려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었던거지요. 그런점에서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었구요. 물론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지금을 생각하며 고르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익숙한 나를 벗어나서 성숙한 나로 옮겨야 삶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겪게되는 불편함이나 불이해는 내 과거 선택에 대한 오류를 자꾸만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본질적인 문제보다 그 시절 많은 것이 부족했던 저의 과거가 오버랩되어 버리며 모든탓을 남편에게 전가하고 싶은거지요. 그저 밉고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다'라고 여길때가 차라리 제 속은 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저 그 사람탓으로 돌리면 되니깐 말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탓한다는 건 내가 짊어져야 할 숙제를 자꾸만 미루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숙제는 결국 내가 풀어내야 하는 것임에도 내가 짊어지고 싶지 않기에 말입니다.


제가 그 숙제를 풀어내고 짊어질 수 있게 한 건 책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왜 남편을 이해하려고 하냐고 말이지요. 사랑은 이해라고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해가 되야지 사랑이 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저같은 사람이요. 불이해로 말미암아 미움의 그늘이 지는 것이 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힘들지 않기 위해 이해의 시간이 필요했고 이해의 끝에 비로소 사랑을 미주할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마주하게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만 마주하지 못하게 옭아매는 것들이 서로에게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저에게는 남편을 불이해함이었고 말입니다.




나와 남의 관계는 자극과 반응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쓰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알지 못하고 각자의 이야기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서로를 알아가며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저와 남편은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우리를 만들어 내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결혼 생활 15년을 지나며 이제야 우리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할까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너와 나의 이야기가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 비로소 본편으로서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것이죠.



부부관계뿐 아닌 살면서 맺게 되는 모든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요? 너,나 따로 충돌하는 관계는 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둘의 이야기가 결합되어 우리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바로 관계를 맺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남편탓만 하게 되었을 때는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짊어질 것이 없기에 그저 내가 떠안고 있는 것을 떠넘겨버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그 짐을 다 짊어진거 같진 않아서 억울할 때도 있어지만 말입니다. 관계안에서 나를 진정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은 거울을 보고 있지만 거울을 보지 않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거울을 본다고 하지만 봐야하는 것이 아닌 그저 보이는대로 보기만 하는거죠. 나를 바라보지 못한 바라봄은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상대방까지도 왜곡시켜 버리고 내가 만든 왜곡으로 상대을 단정짓게 됩니다.


이런면에서 저희 부부는 꼭 닮았습니다. 저는 제 시선으로 남편을 단정짓고 남편 역시 자기가 느끼는 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치명타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두 사람이기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리고 인정하는 것에 그토록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신혼때 남편이 던진 투사에 참 많이도 반응했던 거 같습니다. 투사의 모양이 진짜 나인양 내가 잘못이고 내가 바뀌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노력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저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었을 뿐이죠.


그렇게 남편은 던지고 저는 받아서 해결하는데 급급한 채로 신혼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제가 더 이상 받아 칠 여력이 없을 때는 무시로 일관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무시한 입장에서 그거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무시에 오히려 더 큰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 아시나요? 다행히 심리에 대한 여러 책을 보면서 알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게 되고 차츰 나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꼬이고 꼬인 매듭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특히 남편과 관련해서 책으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부부관련 책으로 모든 부부에게 권하고 싶은 박성덕 소장님의 <당신, 힘들었겠다>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두 권은 부부계의 바이블이라고까지 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주변에 소개도 많이 했습니다. 진주 서평으로도 남겼으니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숨어 있지만 마음이 품고 있는 에너지는 강력해서
인내의 한도를 넘으면 폭력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무시로 일관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 느낀 이유가 이것입니다. 무시는 내 에너지를 쓰는 것이고 그 에너지가 긍정이 아닌 부정의 날것이기에 스스로를 좀먹습니다. 남편에게 말과 행동, 표정까지 오히려 제가 더 힘들어지더군요. 내 온 몸은 '니 탓이야, 니 잘못이야 내가 이러는 건 너때문이고 니가 알아서 잘해야 해!'라는 무언의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니 말입니다.




나의 날것 그대로를 마주해야만 그 날것에 대한 추궁이 생깁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할까? 나는 왜 그럴까? 왜 이토록 미운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변화는 상대가 아닌 내 안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으면서 분만 내고 있으니 상대도 알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제가 만난 문장과 그 문장으로 인해 재해석된 저의 서평이 그 분노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작은 남편에 대한 풀지 못한 분을 쏟아내기 위해 무작정 푸념어린 글을 써내려가다 결국에 그 글에서 저의 날것을 마주하며 흠칫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남편을 향한 글이 결국에는 저에게로 방향이 틀어지고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성찰의 반복을 통해 자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혀 가게 됩니다.



망설임은 나의 정체성이 불확실해서 생기는 문제


망설임으로 인한 지지부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불확신한 것들의 확신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확신한 것들의 실체를 스스로 마주하고 풀어나가지 않으면 결코 이해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는 불안전하고 불확실하다는 전제를 깔고 스스로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결국에 내가 아닌 타인마저도 품을 수 있는 품이 넓어지는 것이죠. 어쩌면 완전하고 확신에 찬 스스로가 가장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미움을 같은 사람에게 동시에 느낀다면 갈등 상태입니다



남편과 우리 이야기를 쓰기 위한 서막으로 올 한해가 최고의 갈등상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부부만의 문제 뿐 아닌 집안일도 관련되어 있어 쉽지만은 않았지만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닌 서로 지기 위한 시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남편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하는 말에 인상부터 쓰게 되긴 했지만 (남편이 이야기하자고 할때 대부분 안좋은 이야기니 자동반사적으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 지난 오늘 저는 동지애와 더불어 함께 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으로 마무리가 지어졌습니다.



삶의 핵심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타협입니다



관계의 핵심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는 타협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협을 통해 서로 가장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 기본 전제가 너도 맞고 나도 맞지만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맞는 것도 찾아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로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결혼 15년차 부부입니다.


우리로서의 사랑을 찾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아마도 자기애에 대한 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완성이 아닌 우리의 애로 만들어가기 위한 지난한 시간 역시 또 필요하겠지만 부부관계 포기가 아닌 포용으로 2022년을 마무리하게 되어서 감사하고 고마운책입니다.


제 주관적 해석으로 부부이야기로 재해석해서 서평을 썼지만 이 외에 도움되는 문장이 많은 책입니다. 삶에 대한 전반적 재해석을 위한 책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연말되시길 바라며 진주서평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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