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일은 불현듯 일어난다. 오히려 마음의 동요됨 없이 평화로울 때 말이다. 그래서 그 순간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 고요속에 평화롭게 잠자던 소요가 말이다.
결혼 15년간 남편의 때려부심은 어제로 4번째 기록된다. 매번 내 마음의 동요가 아닌 남편 마음에 요동치던 파편은 큰아이로부터다. 심지어 첫번째 때려부심은 큰아이 뱃속에 있을 때 생긴 일이다. 남편과 큰아이의 마음은 묶여 있는 것일까?
중1 사춘기인듯아닌듯 한 큰아이는 한번씩 우울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 우울함의 시초는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같은 성을 가진 아빠의 행동과 말, 그로 인해 불거지는 가족과의 트러블이다.
아이는 부쩍 아빠의 아빠답지 못한 행동거지에 우울한 표정을 일삼았고 아빠에 대해 이해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엄마인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렇게 자기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차 마음속의 이해되지 못한 것들이 서로 충돌한 것이다. 어제 그토록 평화로웠던 저녁에 말이다. 아빠에 대해 물음표를 가진 아이와 그 물음표에 대한 답을 아빠 스스로 정의내려버린 것이다.
아이는 청소년기 아이도 어른도 아닌채로 어른의 머리를 먼저 가진 것일까? 투닥임은 어느새 아빠에게 대듬이 되어버리고 아빠 키만큼 자란 아들과 아빠는 자연스럽게 대치 상황이 되어버린다.
어린 두 동생이 아빠를 말리고 엄마인 나는 큰아이를 방으로 대피시킨다. 큰아이를 한대라도 쳤으면 덜했을까? 분이 안 풀린 남편은 식탁 의자를 여과없이 때려 부신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두세번 겪고 보니 그것이 남편 분풀이임을 알기에 그저 내버려두고 할만큼 했을때 그만하라고 했다. 그러기 전 이미 둘째와 셋째는 겁도없이 아빠를 막아선다. 오히려 아빠이기때문에 감정적으로 무조건 지지하던 큰아이와는 사뭇 다른 둘째와 셋째다.
날뛰는 아빠의 분이 담긴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것이 엄마로서 다행이자 신기하고 아이러니하다. 이미 아빠와 심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한 환경(둘째 임신때부터 주말부부)이 작용했던 것일까.
남편은 식탁의자 두개, 식탁 모서리 그리고 노트북을 하나 박살낸 뒤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예전과 다르게 분풀이가 좀 오래 머물다 간다.
결혼 15년차 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결혼기념일에도 15년이나 잘 버티고 살아냈구나 하는 마음이 일렁일듯 하다. 잘 지켜내온 버팀에 대한 악수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가는구나에 안녕이랄까?
남편과는 심적인 거리두기에 머뭄상태이다. 결혼내 마음에 동요가 이제야 더 이상 갈 바 없음을 알고 포기를 한 것일까? 남편으로서는 마침표를 찍어내는데 아빠로서는 엄마인 내가 할 도리가 없다.
그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채 아이를 이해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