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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n 18. 2024

every day 신앙일기

믿음을 쓰다/6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전서 4장 7절~16절 중-

오늘 이사야 말씀을 읽으며 신앙일기에 인용해야지 했던 성경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디모데전서 말씀을 주셨다. 내자신을 연단 할 것과 그 연단의 성숙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라 하신 것.


북클럽을 여러개 운영하며 내 나이 또래 엄마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한 팀은 부모교육을 계기로 모인 그룹이라 기본적으로 배움에 대한 니즈가 있는 분들이다. 다른 한 팀은 전혀 사전 정보없이 모인 분들이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 외 전혀 서로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역시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모인 그룹이라 한달에 한번 책을 완독하는 것 외 아직까지 크게 니즈가 없다. 책을 통해 만난 인연으로 가끔 구실삼아 밤마실을 하는 것에 대해 더 즐거운 마음을 느끼는 그룹이라고 할까?


그 중 한 멤버가 자꾸만 내 선을 넘고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애초부터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 없이 그 멤버는 그냥 내가 꼴보기 싫은 거였다. 


이상하게도 내가 책과 관련한 자리에 서게 되고 리더 역할을 한 후 알게 모르게 시기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나보다 그들의 조건이나 환경, 그 외 개인적인 내외적 부분에서 나은 이들인데 별거 아닌 거 같은 사람이 리더랍시고 주절거리는 것이 꼴보기 싫을수도 있을거 같다. 


어제 다른 북클럽 멤버에게 살짝 불편함을 토로했더니 진주님이 그만큼 안전함을 주는 사람이고 그 안전함이 진주님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말을 해준다. 내가 이끄는 모임은 내가 먼저 손을 놓지 않고서는 해체되는 법이 없긴 하다. 물론 내가 먼저 손을 놓은 모임은 아직은 없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고 지속하는 끈기가 있다고 할까?


그런 와중에 나를 향한 시기의 시선이 피로감을 일으켜 그 모임을 나몰라라 하고 싶었지만 다른 멤버들이 3년차에 접어든 그 모임에 자기 소리를 내어주고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와중이라 또 한번 그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 


내가 성숙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를 향한 시기와 이유없는 질타까지도 받아봐야하는 걸까? 사실 그런 시기와 질타를 나는 내 문제로 끌고 오지 않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먼저 살피긴 하지만 내 선에서 먼저 남의 선을 넘는 편이 아니고 남의 일에 오지랍을 떠는 성격도 아니기에 다른이에게 크게 불편함을 초래하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심리에 관심이 많고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면서 사람들의 심리나 마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인해 더욱 사람에 대해 배웠다고 할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멤버 역시 자기 문제로 비롯된 시선이 괜한 타인에 꽂힌 것임을 알기에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내 선을 넘는게 불편한 건 유독 내 선을 지키는 편이라 그럴 것이다. 


나는 가족과의 사이에서도 선을 넘는 걸 굉장히 불편해 한다. 자기색이 워낙 강하고 내 것을 추구하는 바가 인생 낙이기에 가끔 가족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선을 넘는 사람을 통해 나를 매만져 가는 주님이실 수 있다. 주님 안에서의 성숙이란 말씀과 기도의 단련이 기본이지만 인간관계 내에서 얼마나 참고 인내하며 수용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라가 아니다. 믿는 자라고 해서 바보스럽게 참고만 있어라 하시지 않는다. 나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나 자신을 지키며 타인을 수용하는 것.


기독교에 대해 가장 큰 오해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미련하게 참고 미련하게 받아주는 것. 그것은 오히려 길 잃은 양을 더 날뛰게 만드는 것이다. 길을 잃어 인도하고 안내해 주기도 하지만 주변 악한 무리에 대해 스스로 지켜낼 힘과 지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아닐까?


미련하게 참는 자를 사람은 따르지 않는다. 미련해 보이지만 중심 있는 믿음의 성숙이 갖춰져야만 다른 이를 구원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다. 믿음의 성숙이라는 것이 오랜 신앙의 연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매일 날마다 십자가에 자신을 묶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붙들린 자 되어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만큼 주변을 품고 수용하는 것,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 장점을 안전함으로 이야기 해 준 멤버들이 아마도 내 안에 임재하시고 내주하시는 주님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가장 불완전하고 가장 불안정했던 나를 오랜 시간 다듬어 내셨다. 유년 시절 불안에 내내 시달리며 그 불안을 알아봐주고 돌봐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었고 결혼 이후에는 내가 가장 바라는 안정감이라는 요소를 도대체 허락해 주시질 않았다.


묘하게도 내가 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정감을 내 가정내에서가 아닌 내가 머무르고 내가 거하는 자리에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평강이 있듯 내 안의 안전함으로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전하시고자? 


얼마전 인터넷 기사에 어떤 모델에게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냐는 질문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니깐요 라고 당당히 말하는 외국인을 보았다. 그 기사와 영상이 나름 이슈가 된 것은 너무도 당당한 그녀에 모습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내 안의 거하시는 평안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불편함을 주는 멤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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