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 Jun 20. 2024

every day 신앙일기

믿음을 쓰다/8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1:20,21-


연재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갈수록 부담이 된다. 매일 믿음을 쓰기 위해서는 믿음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심고 거두어야 하니 말이다. 거룩한 부담이고 그 거룩한 부담을 통해 내 믿음을 키워나가실 주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이렇게 써 내려간다.


믿음을 쓰다는 그저 글부터 무작정 쓰지 않는다. 말씀을 보고 신앙 서적을 보면서 내 안의 떠오른 단어들이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저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 간다.


한편으로 이래서 많은 작가들이 시간을 정해두고 그냥 글을 쓰라고 했던가 싶다. 역시 글은 그냥 쓰면 된다. 써야지 하면 써야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글을 쓰는 에너지 보다 쓰기 위한 준비작업에 공만 들이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새삼 이렇게 훈련하시는 것에 뜻이 있겠지 싶다. 순종해야지.


평안의 때를 지나고 있다. 시댁일로 인해 남편이 가끔 삐딱선을 타기는 하지만 왠일인지 가정일에 충실하려 하고 그토록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부분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니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다. 요즘 남편을 위한 기도가 통했던가?


바라는 건 한 가지다. 남편이 시댁으로부터 정신적 독립과 우리가 세워나가는 우리 가정에 대한 우선순위. 사시나무 떨듯 시댁일과 관련해서는 벌벌 떠는 그이지만 친정엄마의 기도와 나의 신앙적 내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믿음의 끈을 놓지 않게 하시니 그저 감사하고 끝까지 기도의 끈을 절대 놓지 말아야겠다 싶다.


신기하게도 신혼때부터 골방에서 외롭게 하나님을 구하며 기도하게 하셨다. 남편과 시댁을 위해서 말이다. 그 기도가 십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통해 기도하게 하신 이유를 알게 하셨으니 참으로 신묘막측할 뿐이었다.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이사야 54장 5~6절 일부-

얼마전 꿈에 담임 목사님이 나오셔서 시부모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지 라는 말씀을 하셨다. 뭐지? 꿈이 깨고 생각해보니 시댁에 철저하게 가려진 이중 모습을 알게 된 후 시댁과의 연을 끊었다.


나와 우리 가정을 지키는 길이었고 남편은 그 집 자식이니 어쩔 수 없지 라며 시댁과 우리집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는 남편을 그저 미워하기만 했다. (어머니 투병이 오래되면서 남편은 2주에 한번씩 시댁을 가고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시댁은 기묘하게도 시누와 남편 둘다 시댁에 묶여 버리고 말았다. 간병이 오래되니 그로 인한 탓은 괜한 나에게 돌아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댁과 시누 가정을 위한 기도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시아버지와 시누의 이중적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받을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받았고 나와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생각해보면 그로 인해 계속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신다. 인간적 마음이라면 이미 사단이 났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듯 너의 남편 역시 내 사랑하는 자녀라는 말씀을 통해 그 사람을 품고 기도하게 하시고 그 사람의 모태인 시댁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신 주님. 분명한 뜻이 있을거라 여긴다. 하지만 내 상처 앞에서 억울하고 눈물나게 서러운 인간적인 마음은 나로서 어쩔 수 없었다.


상처받은지 몰랐지만 남편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남편을 경계하게 되는 건 그만큼 내 안의 시댁과 남편으로 인한 상처가 쌓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상처가 더 상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작년 연말에 시댁의 이중적 모습을 보게 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알지 못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하는 거 없이 죄송하고 면목없는 며느리로 자책만 했을테니 말이다.


사실 시댁과 남편일만 아니라면 크게 어려움없이  평안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친정과 해주는 거 그 이상으로 잘 자라주는 우리 삼남매까지 그저 감사할 일 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그 감사도 평안의 때를 벗어고 보고서야 감사인줄 알게 됐지만...


결혼 연차가 쌓이고 아이셋을 키우며 가정안으로 안착하길 바랬던 남편은 되려 어머니 투병으로 시댁으로 기거해 버리는 지난 몇년간 내 마음의 요동은 말할 수 없다. 그럴때마다 하나님만 붙잡고 하나님께 토로하며 하나님 안에서 도우심을 바랬다.


나를 믿음의 뜰안으로 들이실 수 있는 건 어쩌면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그 한 영역이라는 것, 그것을 통해 나를 붙들어 매시는게 아닌가 싶다.


과연 남편과 시댁을 향한 끝이 어딜지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무엇일지 모르겠지만 그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며 남편과 시댁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매일 기도하며 매일 구하게 하시는 이유는 반드시 있으실 테니 말이다.



이전 07화 every day 신앙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