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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n 27. 2024

every day 신앙일기

믿음을 쓰다/13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찬송가 429장-

중2 큰아이가 반항 아닌 반항끼를 부리고 있다. 워낙 순한 아이라 강도가 세진 않지만 평상시 워낙 모범적인 아이인지라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에 걱정이 앞서지만 이성적으로 아이를 다독이며 참아내고 있다. 


그러던 차에 어제는 말도 없이 학원을 안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이가 학원 선생님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건 얼마 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아이와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학원을 옮기기로 결론은 났다. 학원을 옮기기로 하니 마음이 더 뜬 건지 별별 핑계를 대며 숙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더니 결국 숙제를 안 한 것이 스스로 걸리니 학원을 안 가버린 것이다. 중2병이라고 해도 엄마 말에는 수긍을 하는 편이라 이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이성의 끈을 붙들고 참았던 내 감정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던가보다.


한 번씩 큰아이가 내 핸드폰을 몰래 가져다 패밀리링크로 보너스 시간을 조절을 해놓는 일이 있어 몇 번 주의를 줬는데 오늘도 보너스 시간을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마침 막내가 닌텐도를 달라는 말에 화가 점화되면서 어제 참았던 화를 기어코 분출하고 말았다. 


큰아이가 중2병이 시작되면서 오늘 두 번째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첫 번째 집을 나온 사연에 대한 글이 브런치에 간직되어 있다) 이왕 나가면서 강아지 산책까지 고려한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다. 화가 나도 이성의 끈이 설정되는 나란 엄마가 참 웃기지만 강아지 산책을 하긴 했어야 하니...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소연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어제 일 때문인지 괜히 혼자 중얼거리며 분풀이가 나왔다. 괜스레 전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남편까지 미워지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오늘 신앙일기를 쓰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앗! 내가 이렇게 불평을 할 것이 아닌 내 마음을 주님께 아뢰자는 마음이 생기니 불현듯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라는 찬양이 떠오른다. 입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수그러든다. 그래 받은 복을 세어봐야지.


오늘 레슨 하며 안타까운 한 학생의 환경이 떠오르며 그 아이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참 형통한 길을 가고 있다는 감사가 떠오르고 그 학생에 대한 기도도 하게 되고 말이다. 


그러다 엄마와 오늘 통화하며 하나님이 엄마에게 복을 주어도 엄마는 그 복을 걷어찬 적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5년간 할머니를 모시고 올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 앞으로 할머니 유산이 물릴 예정이었는데 그마저도 엄마는 이런저런 귀찮음으로 머뭇하신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해결되지 않은 일까지 오늘 해결이 되고야 엄마에게 하나님이 엄마에게 복 주시기 위해 마지막 어려움까지 해결되게 해 주셨는데 엄마 이번에는 기꺼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평생을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을 위해 섬긴 엄마가 엄마와 함께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 친구들과 비교되며 내가 뭘 잘못했기에 평생을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냐던 엄마였고 그런 엄마가 안타까워 우리 엄마 축복 좀 해주세요 기도하던 딸이 나였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싶어도 그 복을 못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마를 보고야 알았다. 전적인 은혜에 대한 순종, 그 순종이 엄마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에 대한 감사도 말이다. 엄마 딸인 나 역시 감사가 가장 부족했기에 어느 순간부터 감사 기도를 하며 감사일기도 썼다. 지금은 자연스레 감사를 떠올리고 정말 아주 별거 아닌 것까지도 감사를 아뢴다. 


감사가 곧 받은 복을 세어보는 것이고 세상 풍파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감사의 삶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이 말하는 복과 세상이 말하는 복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믿는 자들은 세상이 바라보는 복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복을 바라고 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시기에 맞춰 잘 자라게 하시고 또 그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고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사춘기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게 하시니 주님이 주신 복에 그저 감사를 드릴 뿐이다. 


가장 어려울 때 주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자. 그 복이 곧 은혜이자 감사의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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