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쓰다/25
그리스도인은 보살피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Yes>
보살피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전제는 그리스도인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거듭나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듭납'은 그리스도인들이 꼭 믿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발견하고 체험하고 널리 유포시켜야 할 어떤 것이다. <하나님의 Yes>
누구든지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실 것이다. -요 12장 26절-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이고 섬김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 한다. 섬김이 진정한 섬김이 되기 위해서는 거듭남이 먼저다. 거듭나지 않은 섬김은 사람이 우위에 설 수 있다. 기독교에서 섬김이 어렵고 힘든 이유는 그 자랑이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믿을수록 어렵다는 것을 믿음의 연차를 쌓을수록 깨닫는다. 끊임없이 십자가 앞에서 나를 복종시켜야 하고 인간적 마음을 꺾고 꺾어 주님의 마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사람이 아닌 주님을 붙들고 의지할 수 있다.
섬김는 자의 위치가 되면 주님은 어떤 섬김을 해야 할지 누가 섬김의 대상인지를 마음으로 알려주신다. 교회가 새로 재건축이 되고 주변에 아기 엄마들이 스스로 교회를 찾기도 하고 교회를 다니던 청년이 결혼 후 아기를 위해 유치부 예배에 참석하면서 아기 친구들 엄마들을 교회로 이끌기도 해서 몇 되지 않은 유치부가 부흥이 되기도 했다.
점점 줄어만 가는 다음세대의 공백을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주시므로 섬길 수 있게 하여 주심이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일부러라도 유치부실에 찾아가 안부를 묻고 다음 주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는 별거 아닌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새산자의 마음이다.
어린 시절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 결혼 후 교회를 떠났지만 아기를 위해 다시 발걸음을 한 자매가 "언니, 왜 마주 나 보러 와요? 인사하러 오는 거예요?" 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을 때 내 마음 안의 자매를 섬기게 하신 이유를 분명 알 수 있었다.
영혼에 대한 마음과 관심은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은혜와 사랑이다. 한 자리를 위한 것이 아닌 한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시선을 보내는 것, 그 시선에는 분명 주님이 계신다.
사실 반주자라는 위치가 교회에 붙박이처럼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 보니 챙겨야 할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만큼 주님께서 나에게 섬김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마음을 많이 받는다.
마흔 중반 언제까지 반주자리에 있을지 30대 마지막부터 고민했는데 아직은 이 자리를 지키길 원하시는 듯 하지만 또 다른 섬김의 자리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는 중이다.
어느 교회나 섬김을 하는 자보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더 많겠지만 섬김을 받음으로 그 섬김의 통로를 통해 섬기는 자의 자리로 옮겨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