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서평 2025/9
시인의 문장은 읽을수록 곱씹게 됩니다. 곱씹으며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애씀이 필요한 것이 시인의 문장입니다. 그리고 시인의 문장은 훔치고 싶을만큼 아름다워서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삶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언어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시인의 문장을 안주 삼아 내 삶을 한 잔 기울리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어설프게 흉내낸 시인의 문장으로 인해 삶을 이야기고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깐요.
시를 짓는다는 건 결국 인생을 지으며 삶을 완성하는지도 모릅니다. 시를 짓듯이 인생을 지을수만 있다면 불행조차도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은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이 아닌 그 사건과 상황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겪은 일과 상황에 대한 표면적 해설로 인해 우리는 삶을 축소하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나보다 나은 삶도 남보다 나은 내 삶도 별다를바 없습니다. 그저 건너고 있는 서로의 시기가 다르고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이 커보이고 내 불행에 얹은 행복을 남이 저 몰래 흠모할 뿐입니다. 나 역시 남의 불행에 기대어 내 행복 삼는 적이 있으니 억울한 건 없겠죠?
나의 궁핍은 너희의 비웃음을 위한 재료가 아니다
동정을 받는다고 고마워해야 할 이유도 되지 않는다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거기에 우열은 없다
내 마음에 내가 아닌 말들을 채움으로 편안해졌다는 시인의 마음에 살코시 제 마음도 겹쳐봅니다. 가끔은 나와 내 주변의 말들은 걷어낸 채 그저 나에게 당도하는 무수한 문장으로 내 마음의 안식을 삼아봅니다. 그렇게 마음의 양식처럼 문장을 먹은 흔적은 내 마음을 관통하여 또 다른 글로 이렇게 탄생하니 먹고 먹는 사이라고 할까요?
문장문장마다 시인의 깊은 사유는 곧 나의 사유를 관통하며 시인의 사유에 기대어 나의 사유를 살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삶이 불행한 이유는 기대어 나갈 각자의 서사가 앉을 곳이 없기 때문일까요? 스스로를 아는 앎이 가장 큰 지혜일터지만 우리가 스스로 지혜를 지어낼 만큼 성숙하지 못하니 우리는 이렇게 먼저 앎의 자국을 밟아온 이들의 글로 지어낸 지혜를 읽어갑니다.
저마다의 삶이 각자의 마음을 앓고 있을 때
나는 가끔 보이는 모든 세상이 평온한 통증처럼 여겨진다
가장 초라하고 비참할 때는 초라하고 비참한 상황이 아닌 나만 초라하고 비참하다 느끼는 순간입니다. 나만 그런거 같을때 말이지요. 반면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느낄 때 우리는 마음의 먹구름이 한순간에 지워지는 때를 마주합니다. 세상에서 나만 그런게 아닌 순간이 많을수록 불행값은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나만 그런가?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가장 외로운 순간을 견뎌온 자는 너만 그런게 아니야 나도 그랬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정신이 혼미해질때 가장 필요한 건 나만 그런거 같은 마음이 그런 마음을 만나서 포개어질때 입니다. 지금 나만 그런거 같다면 또 다른 나만 그런거 같은 이의 마음을 찾아보세요. 분명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평온함이 찾아올겁니다.
시인의 문장은 아프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불행하지만 행복의 자국을 더듬어보게 합니다. 깊고 깊은 사유의 통찰은 그렇게 문장으로 지어지나 봅니다.
때로는 서로 미워하겠으나 끝내 용서할 수 있다면
잘 빨아서 개켜둔 나를 늘여 아이에게 입혀주고 싶다
아픔을 지나온 자리는 또 다른 아픔의 자리를 눈치챌 것이고 슬픔의 자국을 남긴 자는 결국 슬픔의 자국을 알아 볼 것입니다. 시를 짓듯이 우리가 서로 지어진다면 사는 일이 조금은 견뎌질만 할까요?
나를 잘 개켜서 누군가에게 입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시인은 참 따뜻합니다. 세상이 살 만하고 살 이유가 충분한 건 여전히 아름다운 문장을 짓고 그 문장을 먹이고 입혀주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그런 문장을 지어내고 싶은 소망을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