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운 보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by 진주

어버이날 하필 시니어 학생들 레슨이 잡혀 사전에 어버이날인데 레슨이 가능하냐 여쭈니 다들 주말에 왔다가니 평일에 상관없다 하신다. 혹여나 직장인 학생도 어버이날인데 레슨 괜찮냐 물으니 레슨후에 운동을 간다길래 레슨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연습실에 온 직장인 손에는 카네이션 바구니가 들려있다.


어버이날이라고 뭘 하지는 않지만 뭘 안해도 괜히 신경은 쓰이는 딱 그만큼의 효심만 가진 딸이다. 어제 교회에서 어버이날 기념으로 부모님 두분이 놀러를 가신다기에 잘 다녀왔냐 전화는 이미 했기에 어버이날이라고 오늘도 전화를 하는 도리는 패스해도 괜찮게 여길 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딸이라 해도 내심 마음이 동해서 전화드려 뭐 하시는지 필요한 건 없으신지 여쭤는 봤다. 물론 대답은 항상 없다이다.


마침 레슨도 늦게 끝나서 날 낳아준 부모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안부만 전하는 것으로 딸로서 양심은 지켰으니 저녁 8시 다 되어 집에 도착해 내 새끼들 밥 차리느라 어버이날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이들 모습에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딸인 나도 부모에게 잘하는 편은 아닌지라 아이들에게 효도를 강조하기에는 면이 안 서니 괜시리 오늘 어버이날인데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는게 도리가 아니니 의문형으로 던지고 큰아이들에게 설거지와 이부자리 준비는 어버이날이니 해줬으면 한다했다.


그리고 막내를 데리고 9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버스로 세 정거장인 친정으로 향한다. 물론 꽃바구니를 사서 말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일을 떠넘기며 키운 보람은 한번쯤 느껴야 하지 않겠냐 했던 말이 딸인 나에게 파장을 일으키니 카네이션 꽃바구니는 손에 안겨 드려야 아이들에게 한 내 말이 조금이라도 찔리지 않을거 같았다.


키운 보람은 한번씩 느껴야 하지 않겠니?


한창 아이들에게 돈 많이 들어가는 때라 내 40대는 하기 싫은 일도 더해가며 돈을 벌어 아이들에게 쏟아붓다보니 한번씩 현타가 몰려와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그런면서도 아이들에게 더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모인게다. 그런데 내 부모라고 안그랬을까?


정서적인 결핍은 있을지언정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셨던 부모님이기에 내 유년시절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중고등학교때는 특히나 브랜드에 빠져서 한창 유행하던 브랜드 옷만 사서 입었고 피아노를 했던지라 그랜드 피아노 사달라는 말에도 단 한번 거절없이 돈을 쥐어주신 부모님이다.


어찌보면 해달라는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때 내 부모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부모노릇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은 딸이지만 말이다.


시간이 늦었기에 막내에게 꽃바구니만 전해드리고 바로 집에 가자 했더니 아이가 '엄마 절해야지' 한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는거라면서 말이다. 괜히 심통이 나서 알면서 엄마한테는 왜 안해줬어? 하니 꽃이 없어서란다. 아이다운 발상에 웃음이 지어지며 엄마보다 낫다 싶다.


부모님 집에 가자마자 막내는 꽃바구니를 안고 안방으로 덥썩 들어가서 할머니에게 안긴다. 순간 부모님의 얼굴에 피어나는 함박웃음을 보니 잘했구나 조금이라도 키운 보람 느끼시려나 싶다. 애교 많은 막내덕이다. 엄마가 못하는걸 아이가 대신 해준다. 엄마가 알지 못하는 걸 아이가 알려줘서 말이다.


부모가 되어 봐야지만 부모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건 진리인가보다. 여전히 딸로써는 빵점에 가깝지만 내 아이들에게서 절실하게 느낀 서운함을 통해 내 부모의 아쉬움을 느껴본다. 그렇게 부모의 아쉬움을 채우는 것으로 자식으로써의 양심도 챙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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