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야기

거리두기만이 살 길인 부부

by 진주

나는 주말부부다. 주말부부라고 해서 금요일에 남편이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일요일에 출근하는 흔한 케이스의 주말부부와는 다르다. 남편 직업상 주말마다 쉬는 게 아니라 근무조에 따라 토요일에 오기도 하고 현장이 있는 지역에 따라 2주에 한 번이나 심할 땐 한 달에 한번 올라오기도 하는 형태의 주말부부이다.


나는 나만의 루틴이 정확한 사람이고 정해진 룰대로 행동해야지 안정감을 찾는다. 갑작스레 닥치는 변수에 대해 감정이 혼란스러워지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남편이 주말이 아닌 날에 갑자기 올라오는 것도 나를 혼란하게 하는 일 중 하나다. 남편이 자기집 오는데 왜 아내인 사람이 혼란을 말하는지 당황스럽기도 할 테지만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내가 유지하고 지켜온 룰이 방해를 받는다는 건 그것을 지켜온 내 입장에서 결코 달갑지는 않다.


금요일 오전에 서울에서 외근이 있다며 목요일 저녁 집으로 퇴근해서 역시나 두 손 한아름 무언가 사들고 남편이 들어온다. 그때부터 나는 무감정 상태에 돌입한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이기도 하고 나의 감정으로 인해 서로 불편한 일이 생기기 않게 예방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지없이 남편은 내 선을 넘나들며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최대한 무감정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애쓴다.


그렇게 난 남편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안정보다는 불안정이며 만족보다는 불만족에 가깝다. 백 프로 남편의 탓이 아닌 8할은 내 감정의 몫이다. 그러기에 최대한 내 감정을 살피고 내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내 나름 모색하며 시도하지만 가끔은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파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속수무책 당할 때도 생긴다.


외근을 일찍 마치고 집에 다시 돌아온 남편은 무언가 불편한 기색이다.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며 아이스크림을 꺼내놓고 갑자기 사온 떡을 먹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녹아, 지금 안 먹을 거면 냉동실에 넣어둔다." 라고 이야기하니


떡 다 먹고 먹을 거라며 뚜껑을 열더니 '안 녹았네' 라며 굳이 한마디 던지며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그래 녹는 걸 먹던 말던, 왜 내가 거기까지 신경 써서 괜히 내 기분만 상하게 했을까'


나는 후회한다.


일을 마친 남편도 밖에서 불편한 무언가 있었고 나 역시 남편과 함께 하는 순간 불안정이 작동되는지라 두 마음이 만나면서 스파크가 일어나려 한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는 크게 싸우지도 않는다. 남편은 화가 없는 사람이다. 아니 화를 잘 참는다고 할까? 천성이 선한 사람이라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봐 왔지만 화를 낸 건 진짜 단 몇 번뿐이다. 남편이 화를 안내는 것과 부부싸움은 별개다. 난 나 혼자 열 받고 나 혼자 다스리고 깨닫는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반려견인 여름이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원래 둘 사이는 좋지 않다. 그래서 제발 강아지에게 무관심하라고 해도 그나마 본인에게 반응을 해주는 건 강아지라서 그런지 강아지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 데도 죽어도 가까이 가서 건드린다.


"제발 자기 입장에서만 행동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행동해"라는 소리가 결국 튀어나왔다.


남편은 내가 화가 난 거 같으면 무조건 후퇴다.


맞다. 우리 남편의 가장 큰 문제는 정서적 소통이 불능이다. 이 부분은 신혼 때부터 나의 가장 큰 화두였고 이 문제로 인해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을 정도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지라 정말 어린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치듯이 하나하나 가르쳤지만 자기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으니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감정에 대한 공부를 하기 전까진 나도 몰랐다. 분명 남편에게 느끼는 불편과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딱 명확하게 단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문제는 사는 내내 나를 너무 옥죄었다. 그런데 내가 부모교육을 배우고 더 나아가 감정에 대한 심리 공부를 여러 방면으로 하게 되면서 우리 부부의 문제를 명확하게 집어 내게 되었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왜 그런지에 대한 이해는 가능했고 남편의 없는 부분을 있게 만들기보다는 그런 남편을 견디는 것이 차라리 나에게는 빠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살아보면 알 거다. 부부 문제라는 것이 안다고 해서 실천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두 사람이 엉겨 붙어 나뒹구는 결혼 생활이란 것에 해답이 절대 있을 수 없다. 그 해답을 위해 서로의 노력만 있을 뿐이지 말이다.


(부부이야기를 쓰니 내 타자가 마구 날았는지 옆에서 그림 그리고 있던 열 살 딸이 '엄마, 좀 살살 쳐' 라며 한소리 한다.)


갑지기 딸이 갑자기 감정카드를 가져오더니 기분을 골라보라고 한다. 나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싶어 딸의 제안이 달갑진 않았지만 딸의 노력에 응해보고자 한번 고른다. 고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에 오롯이 머물게 되며 내가 지금 원하는 감정까지도 살펴보게 된다.

위는 딸의 감정, 아래는 엄마의 감정


남편과 한 공간에 있으려니

귀찮고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

괜스레 지난 감정까지 올라오며

미운 마음이 들어차려 한다

그 이상 감정이 발효되지 못하도록

무관심으로 회피해 본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감정도 찾아보니

난 편안하고 느긋한 여유를 누리고 싶었던 거다.

그런 내 마음에 자꾸만 남편이 돌을 던지니 야속할 수밖에...


내가 아이들과 있으면서 항상 새기는 말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인데 이 말은 남편과 있을 때에도 명심해야겠다.


사실 남편이기에 내 감정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더 타당성을 부여하며 내 감정에 대한 옳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 기분이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야' 라며...


한때는 모든 걸 나의 오만이라는 미명 아래 내 탓만을 일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느낀 감정이 분명 맞고 그 감정에 대한 억압이나 잘잘못의 여부를 따지며 나의 감정을 몰살한 경우가 더 많았음을 알게 되고 내가 가지게 된 감정에 대해서 수용하는 방편으로 노력중이다.


혼자만의 감정이 아닌 관계 안에서 갖게 되는 감정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 감정을 갖게 된 원인이 분명 서로 안에 있기 마련이란걸 난 뒤늦게 알게 됐다. 특히 부부 문제에 있어서는 말이다.


남편과의 문제에 있어서 내가 항상 이런 오류에 빠지는지는 더 알아야 할 문제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며 배우고 적용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가장 어려운 건 부부 사이 문제지만 맞추기 어려운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는 거처럼 이리저리 끼웠다 뺐다 맞는 부분을 찾으며 부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중

이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오늘 빌려온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분명 관계 안에서 미해결 된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나와 남편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분명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지금 표면적인 관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도 안다. 다행히 남편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 없이 나의 선을 마구 넘나드는 사람인지라 대부분 남편 쪽에서 백기를 들고 난 슬쩍 넘어가 준다. 나는 사랑을 사랑으로 받지 못하고 내 선이 무너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성향이라 내 주변은 몇십 년 된 관계 아니고는 어느 누구와도 친밀감을 유지하지 않는다. 마흔이 넘고 보니 여러 사람과 굳이 친밀감을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먼저 친밀감을 갖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난 내가 만든 선을 넘지 못하는 걸 알고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남편에게도 선을 그으며 내 선을 넘나드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니 오죽하겠는가.


다행히 감정을 살피고 이렇게 글로 옮기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비로소 내가 원하는 편안과 느긋함에 머물게 된다. 엄마의 마음을 살피도록 유도해준 딸에게 고맙다.



에필로그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떠안고 사는 사람이고 특히나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더더욱 미약한 존재인지라 그런 내 마음을 글로 쏟아 낸다는 것이 나중을 염두해 두면 석연치 않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통수 살짝 찌릿하지만 올리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내 감정을 위해서다. 그리고 먼 훗날 자라 있을 내 마음을 위해서 치기어린 감정을 남기는 일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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