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야기
아주 먼 옛날
북쪽에서 온 여자를
사랑한 왕이 있었어요
둘은 곧 결혼해
평생 행복하게 살았어요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어요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그림책이나 동화는 '둘은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고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걸 결혼하자마자 깨닫게 되는 게 결혼이란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위트 있는 그림책이다.
결혼 생활 행복한가?
행복과 반대인 불행이라기보다는 결혼생활에서 행복의 반대는 불만족이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요즘 불만족스럽다!! 하하하!!!
아마 결혼 생활뿐 아닌 삶 자체가 행복의 반대는 불행보다는 불만족에 가까울 거 같다. 만족스럽지 못할 때 우리는 보통 불행을 떠올린다. 그런데 불행이라고 말하기에 무언가 불행의 요소는 부족한 거 같고 나 스스로 불행이라고 말한다는 건 너무 비극일 거 같아 굳이 불행을 입에 올리고 싶진 않다. 난 이제부터 행복하지 않을 땐 내가 무언가 불만족스럽구나 생각하기로 다짐한다.
그림책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사랑한 두 남녀가 결혼을 하면서 왕비는 고향을 떠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살게 된다. 왕비가 살던 고향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 왕비에게 왕이 사는 나라는 어느 것 하나 왕비와 맞는 게 없다. 왕과 왕비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다르기에 왕비는 점점 시들기 시작하고 병이 들어간다. 왕은 왕비를 살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지만 왕비를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 한 의사가 왕비는 마음의 병이 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제야 왕은 왕비를 위해 직접적으로 무언가 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아몬드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아몬드 나무가 꽃이 필 무렵 왕비는 몸과 마음이 낫기 시작한다. 그 아몬드 나무는 마치 눈처럼 하얗게 피어나 왕비의 고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가 지어진다.
아주 먼 옛날
북쪽에서 온 여자를
사랑한 왕이 있었어요
둘은 곧 결혼해
평생 행복하게 살았어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며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왕과 왕비이기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부족함이 없었기에 왕은 왕비를 위해 무언가 할 필요성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왕비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병들기 시작하고 그 병은 의사나 약이 아닌 바로 남편인 왕이 왕비의 마음을 헤아리고 직접적으로 왕비를 위해 무언가 행할 때 왕비는 회복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이지만 가장 서로 주고받기 어려운 게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 마음이 병드는 것도 그 마음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도 부부인데 우리는 빠르고 쉬운 해결책 만을 제시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나 역시 요즘 남편에게 불만족스러웠던 건 6월부터 아이셋과 독박 육아 중인데 남편이 내 수고나 피곤함을 배려하며 직접적인 액션을 취했으면 하는 건데 전혀 그러질 못했다. 남편 입장에서도 나름 이유는 분명 있다. 평일엔 직장, 주말엔 시어머니가 아프셔 병원에 가서 병간호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어머니 병원에 계시는 몇 달간 남편에게 정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쉬라고 자리를 내어줬다. 우리 남편만 그러는지 모든 남편이 그러는지 편하게 해 주면 그게 전부인양 쭉 누리려고만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물론 나름 위로를 건네긴 했다. 마누라가 꽃 좋아하니 꽃시장 가서 꽃도 사들고 왔다. 그런데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혼자만의 시간이고 내가 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집안일, 밥 신경 안 쓰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잠깐이라도 있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해주려면 남편이 감당할게 너무 많으니 남편 입장에서 가장 쉽고 편한 쪽으로 배려를 하는 거다. 그리곤 말로만 때운다. '고생이 많아' 라며...
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같이 짊어져 주길 원하는 건데 남편은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만 나를 거들뿐이다. 그것도 내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 이상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나름 애쓰고 있는 건 알지만 전혀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난 요즘 남편이 오는 게(주말부부) 싫다. 차라리 보지 않으면 기대도 없고 실망이 없으니 말이다.
왕도 왕비를 위해 의사를 동원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쓰지만 결국 자기 스스로 왕비를 위해 왕비가 고향을 느낄 수 있도록 눈이 연상되는 아몬드 나무를 심는 행동을 한다. 아마 내가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왕이니 굳이 나무를 심는 일을 직접 하지 않고 신하들을 시킬 수도 있지만 왕비를 위해 직접 나무를 심는 왕이 너무 멋지게 보인다. 가장 멋진 건 왕비가 가장 바라고 원하는 게 무언지 알고 행동한다는 그것이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의 필요를 알아봐 주고 채워주는 일인 거 같다. 결혼 13년 차가 되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거 같다. 그것이 꼭 물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부부는 서로의 몸과 마음을 위한 필요를 항상 서로 살피고 채워줘야 부부 사이가 원만하게 지속된다. 쉬운 듯 하지만 가장 어렵지만 말이다.
사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전하며 필요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 그리고 말하다 보면 화가 올라와 감정을 전하다 괜히 마음만 더 상하게 되는 일을 자주 경험하니 더 그렇다. 그리고 굳이 구구절절 말하기 전에 알아서 내 상태를 알고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에 서러움과 아쉬운 마음을 혼자 키우다 불화의 불씨를 키우는 꼴인거다.
나도 요즘 상태가 나긋하게 감정을 전달하기보다는 전달하다 열만 받게 되는 컨디션이라 그냥 말 안 하고 으레 알아서 해주길 바란 것도 있다. 참 성숙함이란 게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 거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감정을 성숙하게 전달한다는 것이 특히나 남편이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성숙함의 최고봉이 아니고는 가능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으니 남편 오는 날 성숙함 장착하고 내 몸과 마음 상태에 대해 전달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부디 그 성숙함의 가면을 화들짝 던져버리는 일만 생기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