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방식대로의 사랑

남편이야기

by 진주

요즘 고민중인 남편에 대한 새로운 화두는 자기 방식대로의 사랑을 고집하는 것이다. 연애 때부터 그래 왔던 사람인데 결혼 13년 차인 지금에서야 그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아니 막연하던 것을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고 할까? 왜 하필 아이 셋 낳고 14년 차 접어드는 지금에서야 이 문제가 불거졌나 싶고 왜 이렇게 이 문제가 나에게 중요한지 알고 싶다.


바야흐로 20년은 가까이 된 그날, 나는 남편과의 연애를 끝냈거나 결혼은 안 해야지 결심을 했었어야 한다. 내 졸업연주날, 누구 하나 부르지 않고 오로지 남편, 당시 남자 친구였던 그 사람만 참석했고 나의 처참한 꼴 역시 그 사람만 보게 되었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대는 심장을 달래고자 먹었던 우황청심환 탓이었는지 난 졸업연주를 완전히 망쳤다. 곡에 욕심을 내기는 했지만 욕심낸 만큼 연습은 부족했고 더군다나 우황청심환은 며칠 전이라도 먼저 먹어보고 테스트를 했어야 했다. 첫 스타트는 나쁘지 않게 시작했는데 갈수록 머릿속에 악보가 떠오르지 않았고 어느 부분에서 막히고 버벅거리고야 말았다. 그나마 남자 친구만 그 꼴을 봐서 다행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연주를 망치고 드레스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드레스를 겨우 벗는데 남자 친구는 자꾸만 스킨십을 해댔다.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스킨십을 하려는 남자 친구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상대방의 상황이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야 하는 어린아이 같은 철없음을 말이다. 물론 그때 피 끓는 20대 초반이었으니 그냥 넘겼을 수 있겠지만 난 결혼 생활 중에도 그때 느낀 그 마음을 종종 마주한다. 고로 우리 남편은 40대 초반이 되도록 20대 초반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거다.


오늘도 역시나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스킨십을 하려는 통에 '내가 그때 알아챘어야 하는데'라며 한마디 하니 '그때 뭐? 뭐가?'이런다. 스스로 괜히 찔리는 게 있는 건지. 오늘도 역시나 내 기분은 헤아리기는커녕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려는 남편에게 화가 나고 20대 그 시절이 떠오르며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 어쩌겠어.'라는 후회가 맴돈다. 이런 후회는 갈수록 나를 너무 초라하게 하고 내 잘못이라는 탓에 자꾸만 그 시절에 대한 미련이 붙어버리니 괜히 남편이라는 사람이에게 미움만 쌓인다.


최근 남편에 대한 마음을 살피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나는 내가 느낀 그대로 남편을 해석하고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대로 곧 남편이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오류는 상황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라고 했던가? 난 유독 남편에게만 그런 편이다. 쉽게 판단이 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뻔히 보이는 사람이라는 나의 오만이 더욱 그 사람을 내 방식대로 제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만 보이고 만족스러운 부분보다 불만족스러운 부분만 부각되다 보니 부부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말마다 시어머니 병원에 가서 간병을 하는데 오늘은 피곤해서 쉬고 싶다며 어제 하루만 간병을 하고 어제 늦은 밤 집으로 왔다. 얼굴에 피곤이 묻어나기도 했지만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최대한 편한 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내 속이 자꾸 들끊는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 셋에 남편 뒤치다꺼리까지 엉덩이 붙일 새 없는데 남편은 소파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아들들과 신나게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그러면서 밤에 한다는 말이 아이들 비위 맞춰주려 게임을 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 내 입장에서는 주말에도 시어머니 병원에 가 있으니 이렇게 주말에 있는 날에는 아이들과 외출이라도 했으면 하는 건데 남편은 내가 나가자고 하지 않는 이상 먼저 나가자고 말하는 법이 없는 집돌이다. 아쉽게 주말이 이렇게 가 버린다 생각하고 또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 한 푸념이 아이들 잠든 밤에 들끊으며 내 속에서 용솟음치니 남편에게 온갖 화살이 돌아간다. 결국에는 강력하게 노터치를 외치며 남편을 방으로 쫓아내 버렸다.


내가 딱 원하는 남편과 아빠로서의 모습은 아내와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며 자기 방식을 곧이곧대로 자기가 제일 편한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좀 불편하고 내 방식이 아니어도 상대방에게 좀 맞춰주는 것이다. 남편은 심지어 어린이날 선물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보다 자기가 사주고 싶어 하는 걸 사라고 종용하는 사람이다. 이렇다 보니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해도 자기 탓이 아닌 남 탓, 물건 탓이다. 어젯밤에 샤워를 하고 팬티를 안 갈아입은 듯해서 '팬티 안 갈아 입었어?' 물으니 '네가 안 가져다 줬잖아' 이런 헛소리를 한다. 나한테 가져다 달란 말을 하지도 않았고 내가 남편이 샤워를 하는지 세수를 하는지 어찌 알며 그리고 샤워를 할 거면 기본적으로 자기 속옷을 먼저 챙겨서 들어가는 게 기본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나에게 가져다 달라고 했다거나. 나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내 탓으로 넘기는 아주 유아기적 사고의 소유자인지라 아이 가르치듯 일일이 따박따박 설명을 덧붙여주며 잘잘못을 분명하게 해야한다.


의식의 흐름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남편을 억지로 들여다 보내고 책을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KakaoTalk_20210823_003554334.jpg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중


이 부분을 보며 한참 생각을 했다. 나와 남편은 비슷한 유년기를 보내왔지만 부모님의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나 대처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환경이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내면 아이의 문제를 여전히 떠안고 유아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서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살고 있는 걸 안다. 나는 관련 공부를 하며 막연하게 하나씩 해결하는 중이지만 남편은 도통 의식이 없다. 다만 내가 시댁 환경과 남편을 비춰 짐작할 뿐이다. 남편은 대우를 받고 싶어 하고 인정에 대한 욕구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애착 형성에 대한 부분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가족 다섯 명 중에 불완전 애착은 남편뿐이다. 그러기에 남편은 항상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 셋에게 사랑을 주는 거 만으로도 벅찬 사람이고 다 큰 성인에게 애착형성을 위한 사랑을 더해줄 정도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친정아빠가 그러셨다. 어린 시절 일찍 부모님을 잃고 의지하던 큰형마저 잃게 되면서 사랑에 대한 고픔이 무척 많은 분이었다. 친정엄마는 내심 챙겨야 할 시댁 식구가 없는 아빠가 편할 거 같아서 결혼을 했다는데 웬걸 아빠는 무척이나 외로움을 많이 호소하고 그 외로움에 사무친 인생으로 노년까지 맞이 하게 되었다. 엄마 역시 강한 성격 탓에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애정을 갈구하는 아빠에게 애정을 채워주기보다는 가장으로서 부족한 면만 탓하며 평생 불만족스럽게 부부생활을 해 오고 계신다. 어쩜 이렇게 모전여전일까 싶다.


어쩌면 엄마와 나는 책임감이라는 굴레에 덧 씌워져 있는 성격이라 애정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로 살아가는 편이다. 반면 아빠와 남편은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사랑으로 결혼을 해서 아이가 셋인데도, 친정아빠 같은 경우는 연세가 칠십 후반이신데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채우고 싶어서 어린양인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 엄마와 딸인 내가 그 대상들이 철딱서니 없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


내가 남편을 택한 이유가 어쩌면 애정을 주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은 괜한 모성애가 발동함이었을 텐데 막상 결혼 생활이란 현실에 서게 되고 거기에 아이까지 낳고 기르면서 키우는 과정 속에 남편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은 진짜 말도 안 되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 사랑이 채워져야지만 남편이 그 유년기적 상처를 회복하고 성인기로서의 삶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정리가 된다. 다만 남편에게 사랑을 어떻게 채워줘야 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이지만 말이다.





에필로그:남편에 대한 글은 유독 올릴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왜 일까? 창피함일까? 아니면 아직 물음표에 머물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통수가 서늘함을 애써 외면하며 게시글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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