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요즘 내가 실천하고 있는 마음수련은 '상황에 대해 해석 덧붙이지 않기'와 '순간에 온전히 머물기' 그리고 '의식에 흐름대로 놓아두기'이다. 감정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 사람인지 여실히 들여다보고 있다. 대부분 긍정의 피곤보다는 안 해도 될 부정의 피로감이기에 그 피로감으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애쓰는 중이다.
나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을 살아가는 스스로가 좀 편안해지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피곤하게 살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결혼 후 주로 심인성 질환을 겪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남편이었다. 연애 때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신혼여행 때부터 하나둘 드러나면서 나는 혼란스러웠고 원인과 대책을 세우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불안을 떠안기 시작했다. 남편이 큰 결함이 있거나 하는 문제는 전혀 아니다. 이혼 사유에 흔히들 말하는 성격차이였던 것이다. 단순하게 성격차이지만 성격차이 속에서는 많은 요인들을 품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자꾸만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한 당위성을 찾고 싶어 했고 그러질 못할 경우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무언가 매달릴 것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때쯤 내 신앙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내가 믿는 신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부부였기에 나 혼자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나만의 것인 양 내가 달라지고 내가 노력하면 되는지 알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와 자연히 한 몸이 되었고 확실히 증명할 질병은 못되고 신혼 때 부부가 같이 검진을 받은 계기로 심인성 질환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질병으로 따지자면 남편은 몸으로 오는 사람이고 나는 마음으로 병이 오는 사람이다. 몸으로 오는 사람만 아파 보이는 건 당연한 거다. 그렇게 난 내 마음이 병드는지도 모르고 애만 쓰고 살았다. 내뱉을 수 없는 한숨을 삼키면서 말이다.
나 혼자만 치열했던 신혼 2년 기간을 지나고 사정상 친정으로 합가를 하게 되면서 우리 문제는 일단락이 되었다. 자연히 내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합가 기간 동안 나는 비교적 마음의 안정에 머물 수는 있었다. 반면 먼저 합가를 제안한 남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겉도는 듯했고 남편이 잠깐 일을 쉬는 동안 친정아빠와 감정적으로 부딪히면서 분가라는 결론에 나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합가 기간 동안 부모님과 치대면서 살았던 시간은 유년 시간의 시간을 보상받는 듯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내왔던 지라 일주일의 한 번씩 내 집이라 할 수 없는 친정에서의 시간은 남편에게는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섬 같지 않았나 싶다. 친정아빠가 아이들을 주로 케어해 주셨던지라 남편이 아빠로서의 자리도 애매하고 나 역시 친정에 사니 남편보다는 부모님이 우선시되며 남편을 소외시킨 순간도 많았었다.
그렇게 서로 버티고 견디며 사는가 싶더니 의외로 친정아빠와 남편이 감성 상하게 되는 일이 생겨 만 4년의 합가 생활을 접고 분가를 하게 되었다. 5년 만에 온전히 우리만의 울타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도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고 아이셋이 되면서는 더더욱 가족이라는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의 문제라고 한다면 본가와의 독립이다. 정신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상태인지라 본가에 일이 생기면 그 선을 지키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은 자녀처럼 시댁일이 최우선시 되어 버린다. 요즘은 시어머니가 아프신 상황이라 더욱 남편은 시댁일에 관여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그로 인해 정작 본인의 가정은 소홀한 상황이니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날이 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시댁만이 아닌 손위 시누와의 애틋한 관계도 나에게는 자극제가 아닐 수 없다.
시댁 식구와의 정신적 분리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남편이 스스로 독립하려는 의지가 없고서는 해결될 수가 없는 문제다. 시누와 관련해서는 내가 직접 나서며 남편이 긋지 못하는 선을 내가 자처했다. 부모님과는 그렇다고 쳐도 결혼해서 자기 가정이 있는 시누와의 애매한 선은 내가 나서서라도 끊어내야 했다. 사실 시누와의 문제가 나를 제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독립되지 못하므로 애매한 선을 넘나드므로 충실해야 할 가정에 어깃장이 나니 말이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으로 인한 감정적 문제는 나를 감정에 더 몰두하게 만들고 상황에 대한 해석으로 나 스스로에게 자위를 건네며 달래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남편을 견디는 방법이었고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13년이란 결혼 생활을 통해 나에게 남은 건 여전히 상처라는 걸 남편의 독립되지 못한 애매함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오늘도 역시나 시댁 식구와 관련한 일로 내 감정이 건드려졌는지 이틀을 시누이네에서 지내고 온 남편에게 곱지 않은 눈길이 쏟아진다. 곱지 않은 시선과 말을 하면서 내 안의 무의식은 자꾸만 그러면 안된다고 그건 옳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무의식을 무시하고 그냥 쏟아내고 싶은 대로 내 감정을 털어버렸다. 감정을 털어내지 않았던 건 아이들 때문이기도 했기에 그간 참 많이도 참아왔는데 오늘은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자꾸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상황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차단하려 집안을 쓸고 닦으며 머릿속을 봉쇄시켰다. 그 해석을 통해 나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클 테지만 그건 진짜 이해가 아닌 상처 받기 싫은 내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하는 애탐의 결과물일 뿐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해석은 정작 상황의 대한 이해보다는 감정의 연장선으로서 더 큰 감정만 불러올 뿐이었다. 그 감정선의 연결고리를 나 스스로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임을...
결혼생활 내내 특히나 남편과의 시간은 순간에 머물지 못했다. 그 순간을 잠식당하고 과거의 상처에 싸매여 그 상처가 덧날까 스스로 방어만 해왔던 것이다. 과거와 다른 현실을 마주할 때 특히나 더 그랬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 대한 이미지를 혼자 만들어내며 그것이 남편인양 대처하며 살아온 거다. 아직도 남편에 대한 마음은 진행 중이다. 온전히 남편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렇게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