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첫 번째 무덤을 판 거라면 출산과 육아, 거기에 아이 셋은 스스로 무덤을 세 개나 판 격이었다. 그 무덤을 판 현실은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축축하고 때로는 치가 떨리는 두려움을 동반했다. 거기에 자기만의 동심의 세계를 살아가는 피터팬과 아이 셋를 키우는 일은 그야말로 무덤 땅굴을 파고파고 또 파는 겪이었기에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타고난 책임감과 성실함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미쳐 돌아가시거나 다 팽개치고 도망가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그 책임감과 성실함을 기반으로 우리 가정을 아주 잘 보살펴 극진히 모시고 사는 낮은 자리에 들어앉아 묵묵히 도리를 다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하지? 지난한 현실이 지나고 난 자리는 향기로운 추억으로 남으니 말이다. 물론 어느 순간은 향기롭지 못한 다시 맡고 싶지 않은 향기의 순간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현실이 지나 추억이 된 자리에 냄새나는 개똥으로 인해 민들레가 피어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지나고 난 추억이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도망치고 싶고 눈 뜨기 싫은 순간마다 언제가 민들레가 피어날 것이라 소망하며 개똥을 야멸차게 밟아 나가니 말이다.
나를 그토록 피워내기 위해 개똥이 필요했음을 지나고 나니 알겠다. 정작 그 개똥은 나였지만 말이다. 스스로 대단한 인격의 소유자처럼 온갖 고고함을 내뿜던 자아는 결혼과 아이 셋 육아라는 모래밭에서 뒹굴고 뒹굴며 개똥 내를 없애느라 진이 빠지도록 나뒹굴었다. 나뒹굴며 떨어져 나가는 건 결국 내 자아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엄마로 아내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지리 멸절하도록 애처로웠다.
남들은 쉬워 보이는 엄마 노릇, 아내 노릇이 왜 그토록 구역질이 났는지 수십 번 다짐하고 다짐을 해대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그 노릇이 노릇이었기에 구역질이 났다는 것을 지나고 나니 알겠다. 어쩌면 나로 살지 못한 순간들이 엄마 노릇, 아내 노릇을 하며 불쑥불쑥 튀어나와 제발 나답게 살라고 그다지도 시위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위한 끝에 내 마음에는 평생 마르지 않을 젖은 샘이 생겼지만 나는 그렇게 나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고 더불어 아내로 엄마로 살아지게 된다.
다시 태어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을 만큼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시간은 시금석을 캐내는 귀한 나날이었다. 그 나날들의 기록이 결국에는 진주로 탄생되니 나로서는 결혼과 육아야 어서 나에게 오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다짐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라 기꺼이 용기를 내어 정면 승부한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아닌 나로서 엄마와 아내로 살아갈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를 내어 너희들을 키워낼 것이다. 피터팬 역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