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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10. 2022

제왕절개를 하다

고민은 내게 사치일 뿐..

2013년 어느 봄날에 콩닥이가 태어났. 벚꽃이 만발하던 4월의 어느 날, 밝고 따스한 햇볕이 가득한 창가에 누워있던 나는 쉴세 없이 무통 기계의 버튼을 눌러댔다. 너무 많이 눌러댄 것일까? 다른 산모들은 퇴원할 때까지 한통이면 충분하다는데.. 아니 한통도 다 쓰고 퇴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리필을 요구하는 걸까? 간호사들은 콜라리필은 들어봤어도 진통제 리필은 처음이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참을성이 없는 엄마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효과 좋은 진통제는 배에 직접 꽂아서 주는 주사가 있더라. 하..



나는 제왕절개를 했었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의 건강과 자신의 무언가를 위해 자연분만을 추구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도 건강했고 나도 너무 건강했지만 문제는 내 눈이었다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산모는 상당한 힘을 주게 된다. 그로 인해 눈에도 많은 압력이 가해질 것이 분명하다. 몸의 장기 중에서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중에서 점점 약해져만 가는 내 시력을 붙잡고 싶었다. 최대한 자극을 주지 않고 출산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낳는 건 잠시이지만 그 일로 인해 아기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아니 사실 자연분만이 무섭던 차에 적당한 핑곗거리를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이틀을 남긴 새벽이었다. 갑자기 배가 사르르 아파오기 시작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진통 앱을 열어 체크하기 시작했다. 20분.. 10분.. 5분.. 점점 빠르게 시간이 좁혀져 갔다. 아무래도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하는듯했다.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서 준비해 둔 짐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오만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엄마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아기를 어떻게 안아줘야 하며 분유는 어떻게 태워야 하는 거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누워서 잠만 잘게 아니라 검색 좀 해볼걸 그랬어


'그나저나 수술실은 너무 어둡지는 않을까? 너무 아프면 어쩌지?'


수술 전 굴욕 3종 세트(내진, 제모, 관장)는 어찌 견뎌내야 할지 걱정이 많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다시 배가 아파오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담당의사는 출근 전이었고 관장을 비롯해서 그 굴욕적이다는 3종세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굴욕 세트는 굴욕적이었다. 배가 아프니 빨리 수술을 해달라는 마음에서 잘 따라 하긴 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잠시 후 9시가 되었고 소변줄과 링거를 치렁치렁 달고 걸어서 수술실에 올라가 누웠다. 그때부터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에 끼워둔 맥박측정기가 비상을 알리자,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주며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하며 토닥여주었다.



그럼에도 뛰는 심장에 정신이 모호해졌다. 하반신 마취주사를 맞고 나니 상체만 동동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담당 의사가 들어왔고 내 배를 칼로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내 뱃속의 장기들을 위로 밀어 올리는지 상체가 위로 밀리면서 숨이 가쁜 느낌이 들었다. '살아서 돌아가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려고 할 때쯤, 바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뛰는 심장과 마취 때문인지 온몸은 추위로 오들오들 떨렸고 그 와중에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간호사가 아기를 내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마취 탓인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아기가 너무 작고 귀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기의 태명을 불러주었다.


"콩닥아.. 엄마야.."


그러자 아기의 울음이 뚝 그쳤다. 내 목소리에 반응을 한 것이다. 뭉클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앞으로 너를 위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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