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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12. 2022

내 신발 좀 부탁해

남의 시선이 두려운 이유


수술 이틀 만에 병실로 수유 콜 이 왔다.

소변줄 뗀 뒤로 병실과 복도를 오가며 열심히 걷고 또 걸은 덕분에 콜을 받고 바로 내려갈 수 있었다.


링거를 끌고 착한 수유실에서 남과는 조금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다른 산모들의 신발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것이다.


'아.. 어쩌지..'


하필이면 신발을 벗어두는 곳이 너무 어두웠다.

물론 야맹증이 있는 나에게만 어두웠다.


'침착해.. 우물쭈물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간호사에게 내 신발 좀 찾아 달라고 해야 할지도 몰라...'


생각만 해도 대참사다.


최대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남의 발에 차이지 않는 으슥하고 구석진 곳에 가지런히 잘 둬야 했다.


누가 보면 무슨 대단한 비밀 작전이라도 수행하는 사람처럼 머릿속에 생각으로 가득 찼다.



-------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가면 나는 늘 고민에 빠지곤 했다.


'화장실은 어디지? 여자 화장실은 또 어느 쪽이야?'


'내 신발을 어느 칸에 두었더라?'


'물은 가지러 가야 하나 본데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물컵은 또 어디 있고 숟가락 젓가락은 어디 있냐고..'


무엇을 먹을지 즐거운 고민을 해야 할 시간에 이런 상한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신세라니..


물론 엄마나 남편과 함께 가는 곳이라면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알아서 다 도와준다.

마치 공주처럼...


어느 날은 엄마와 샤브 집에 간 적이 있다.

이곳은 먹고 싶은 야채나 토핑 등을 직접 가져다 먹는 샐프 샤브 집이었다. 젊은 나는 가만히 앉아서 엄마가 가져다주고 넣어주고 끓여주는 것을 얄밉게 건져만 먹었다.


'저기 봐..  젊은 딸은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있고 나이 든 엄마 혼자 왔다 갔다 바쁘잖아 저런 딸도 있네 쯧쯧..'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을도 모를 일이다.


남편과 가는 식당에서도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앞접시에 일일이 덜어주는 건 물론이고 국밥 같은 경우에는 후추와 양념장, 부추 등을 다 넣어주고 풀어줘야 먹었다. 먹을 때는 내 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 보통의 사람처럼 잘도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갈 때 남편이 계산을 하고 있으면 나는 그 옆에 멀뚱멀뚱  서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남편의 신발도 꺼내고 자기 신발도 신고 있을 그런 모양새가 나와야 하는데 계산을 끝낸 남편이 신발을 꺼내 줘야 그때서야 신발을 신는다. 마치 머슴이 공주를 챙겨주는 모양새다

언뜻 보면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하녀나 머슴 부리는 듯 보였을게다.


'저 여자는 집에 돈이 얼마나 많으면 저런 대우를 받나..?' 하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뷔페나 샐러드바 같은 곳에 가면 무슨 음식인지 잘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집게와 접시 등을 잘 찾지 못한다. 더군다나 들고 오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 혼자 들고 오려면 정말 신부가 입장하듯 조심스럽게 좌우를 여러 번 살피며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한번 다녀오고 나면 녹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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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 수 있는 그런 은밀한 장소에 신발을 벗어두고 아무도 건들지 않길 바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수유 실안은  커다란 창문 덕분에 한결 밝고 따뜻했다. 세면대 역시 바로 앞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손을 씻고 신생아실의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콩닥이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왔다.

떨리고 겁이 났지만 소파에 앉아 있으면 아기를 안겨주신다기에 앉아서 기다렸다.

내 품에 안긴 아기는 정말 조그맣고 가벼웠다. 그리고 따뜻했다.

기의 눈과 코, 입이 너무나 또렷하게 잘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내 동공이 최대로 확장이 된듯하다.


수술을 한 터라 아직 젖 돌지않았지만 아기에게 한번 물려봐 주고 싶었다. 그 조그마한 입에 어떻게 물려줘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한번 살짝 대어봐 주고는 혼자 흐뭇해했다. 실 조금 쑥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병실로 돌아와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뭔가 옷이 축축해진 것 같았다.


"엄마! 이거 모유 아냐?"


그랬다. 드디어 나에게도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줄줄 흘렀다.


'지.. 나는 시력 빼고는 다 가진 건가?!'


그것이 모유와의 전쟁의 시작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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