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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20. 2022

에이~ 나 금수저 안 할래

행복은 타고나는 게 아니죠

선물 받은 티스푼 세트가 있었다.

원래 쓰던 티스푼이 있던 터라, 한동안 싱크대 안에서 꺼내지 않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집안 정리가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집이 지저분해 보인다거나 (사실 매일 지저분하지만 기분에 따라 더 지저분해 보일 때) 가구 전자제품 등을 새로 들일 때가 바로 그때이다.

그날은 싱크대 상부장에 오랫동안 보관만 해 온 그릇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맨 아랫칸의 한 구석에 얇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물론 이것이 티스푼이란 걸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상부장을 열어 그릇을 찾을 때도 보았지만 쓰던 티스푼이 있으니 모른 척 외면해왔다.

이번에는 정리와 기분전환이 목표이다 보니 상자를 꺼내 열어보았다.

자 안에는 금수저와 은수저, 그리고 흑수저 2개가 들어 있었다.


반짝이는 것이라면 유리조각도 주워 보석이라고 우기는 아이들이 서로 금수저를 갖겠다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랑이 끝에 승리한 첫째는 금수저를 들고 승리자의 미소를 띠고 있고, 둘째는 그래도 흑수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남편과 나는 흑수저.. 하지만 나는 흑수저가 더 이뻤다. 내가 원래 흑수저라서? 아니 그냥 이뻐서 이쁜 거다.


사용하기 전에 세제를 풀고 물로 깨끗이 씻어줬다.


따뜻한 핫초코와 율무차, 그리고 커피를 내려 네 잔에 각각 금수저와 은수저, 그리고 흑수저를 넣어주었다.


첫째는 자기가 금수저를 들고 있는 것에 매우 흡족해하며 핫초코도 더 맛있게 느껴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둘째 역시 은수저가 반짝반짝한 게 너무 이쁘다며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반면 남편은 자기가 왜 흑수저냐며 웃음반 푸념반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다 첫째가 말했다.


"엄마 근데 이 숟가락 끝이 좀 날카로워서 입술이 아프네?"


만져보니 정말 금수저만 끝이 제대로 마감이 안된 것처럼 까끌거렸다.


"에이~ 나 금수저 안 할래~"





사람들을 금수저와 흑수저로 나누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타고난 재능 등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

이 모든 기준들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금수저는 흑수저가 배를 타고는 절대 갈 수 없는 산꼭대기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배를 타고 산으로 갈 수 없으므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는 없지만,

훨씬 드넓고 반짝이는 바다에 마음껏 항해할 수 있지 않은가?

가끔은 넘실대는 파도에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을 잃고 방향을 잡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등대와 나침반을 지도 삼아 항해하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모르겠으면 물이 흐르는 대로 배를 맡겨보는 거다.



금수저로 태어났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흑수저면 어떻고 나무 수저면 어떤가? 어차피 수저는 밥만 잘 푸면 되는 거 아닌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수저이니만큼 까끌거리지 않게 잘 다듬어만 주면 그만이다.


우리의 삶도 시작점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얼마나 행복해질 것인가는 얼마나 인생을 다듬고 즐기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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