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 Dec 20. 2022

'나중'을 믿으시나요?

회피와 약속

"나중에 보자"

"나중에 사줄게"

"나중에 얘기해"

"나중에 같이 하자"

"나중에.."



언뜻 들으면 약속같이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나중'은 지금의 상황을 회피하려는 하나의 수단 같다.


일단 지금은 아니고 '나중'이니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


듣는 사람에게는 약속으로 들리니 문제다.





고등학교 때 한참 삐삐가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반 친구들의 90프로는 삐삐를 가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학교 매점 옆의 공중전화기 앞에는 삐삐의 사서함을 듣기 위한 아이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했다.


핑클빵과 국진이빵, 그리고 피자 스낵 정도를 사 먹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나도 삐삐 좀 사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가끔 예상치 못하게 세상을 앞서가는 말을 하신다.

그날도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삐삐 말고 휴대폰을 사는 게 어때?"


사실 나는 반 친구들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휴대폰보다는 90프로가 가지고 있는 삐삐가 가지고 싶었다.

왜냐면 공중전화기 앞의 무리에 끼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삐삐든 휴대폰이든 뭐라도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랑 휴대폰 사러 가자"


그러고는 며칠이 지났다.


'아 도대체 언제 사주시려는 거지..?'

애가 탔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반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 컴퓨터도 없었고 학교 등록금까지 내가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사실 무리였다.


"엄마! 사주려면 사주고 아니면 말아.."


"아 그래 사러 가자 가자"


결국 엄마는 휴대폰을 사주셨다.

반에서 두 번째였다.


엄마는 휴대폰값과 매달 나가는 요금을 낼 형편이 안되었을 테다. 그래서 '나중'으로 회피하셨는지도 모른다.

철없는 나는 그 '나중'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




엄마가 된 나도 애매한 '나중'을 약속한다. 아니 회피한다.


"엄마가 나중에 같이 놀아줄게."


"응 알겠어~


...


"엄마가 아까 놀아준다며~ 지금 놀자 응?"


"아니 아직 아니야.. 나중에.."


작가의 이전글 에이~ 나 금수저 안 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