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 Dec 21. 2022

모유수유는 현실이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야

아기가 태어나면 자동으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아. 엄마가 되긴 하더라.


'00 어머니'


여태껏 나는 어머니라고 하면 나의 시어머니만 어머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유치원에 보내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00 어머니가 되었다.


한 건데 왜 '00 어머니'라고 하면 아직도 어색하고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수술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허리도 구부정했고 걸음걸이도 어기적어기적한 것이 꼭 할머니 같았다.


그 와중에 모유가 돌기 시작했


아마도 내 몸에서는 엄마가 되기 위해 준비를 꽤나 한 모양이다


나는 모유가 돌면 아기가 알아서 젖을 먹을 줄 알았다


심지어 기저귀갈기와 목욕시키기, 안고 있던 아기를 뒤로 휙~던져서 등에 올려놓고 포대기로 감싸기는 눈감고도 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아기를 만나기 전 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로서 할 줄 아는 것은 세 가지 정도였다.

자기

싸기

...


아. 그리고..

나에게는 다섯 개의 자격증이 있다


1. 지금은 쓸모도 없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 세 개


2. 시각장애인 자격증 (사실은 복지카드다.)


3. 모유수유 자격증

(뻥이다. 모유수유지도사가 있다면 따로 강습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근차근 배워야 했다.


아직은 아기가 신생아실에 있으니 제일  젖 먹이기가 시급했다


처음 수유실에 갔을 때는 젖 돌지 않아서 그냥 아기만 보고 왔지만, 이번에는 진짜 수유 실험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젖을 어떻게 먹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기가 엄마 모유를 맛이 없다고 안 먹으면 어쩌지 이런 어리석은 생각만 했다.


수유실에 도착해서 아기를 받아 들고 젖을 먹여보려 했으나


역시나 아기가 물지 못한다.


아니 내가 물려주는 방법을 모른다. 가 맞겠다.


'아뿔싸..'


. 나는 함몰유두였다.


함몰유두가 뭐냐면.. 보통의 우리가 상상하는 젖병의 꼭지 모양이 아니라 산봉우리처럼 그냥 봉긋하게만 생긴 것.. 그러니까 유두가 짧아서 아기가 물고 빨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게 그렇게 불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함몰유두... 함몰... 뭔가 단어만 들어도 몰락하고 망해버린 무언가를 말하는것 같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


함몰유두를 위한 보조 젖꼭지를 꺼내서 사용해 보았다


이것 또한 출산 전에 맘 카페에서 알아낸 깨알 묘책이다.


하지만 처음 사용하는 물건이다 보니 이걸 어디에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대충 산봉우리즈음에 붙여주고 아기의 입에 쑤셔 넣다시피 넣어주었다.


다만.. 그 작은 입으로 먹을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씨름을 하다 보니 밀착력을 잃었고.. 붙떼도 아닌 것을 붙였다가 뗴었다가를 반복했다.

내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고.. 모유도 줄줄 흘렀다


결국 아기는 그 좋다는 엄마의 초유로 얼굴 마사지만 한 채 단 한 방울도 먹어보지 못했다.


'아.. 망했다...'


만신창이가 된 아기와 나..


'도대체 둘이.. 아니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야'


모유 범벅이 된 아기를 다시 신생아실에 맡기고 씁쓸한 마음으로 뒤돌아서 나왔다.


갑자기 열등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신생아실 콜이 두렵기까지 했다.


아기를 보는 건 좋은데.. 수유실에 아기를 보기만 하러 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건 뭐.. 세상은 공평하다더니..


내 속눈썹을 길게 해주는 대신에 시력을 뺏어가고,


분수같이 쏟아지는 모유를 주는 대신에 젖꼭지를 뺏어가다니..

'

공평한 거 맞나...?'

작가의 이전글 '나중'을 믿으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