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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23. 2022

모유수유는 현실이었다  2

유축기의 발견

나를 젖소로 만들어 준 유축기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병실에 있을 때였다.


그 망할 붙떼 젖꼭지 때문에.. 아니 내 함몰유두 때문에 아기에게 초유 한 방울 먹이지 못하고 병실로 돌아온 그


나는 보았다.

티브이 아래의 수납장위에 놓인 동글동글하게 생긴 그 녀석을..


여태 티브이 그렇게 보았는데 그 아래 유축기가 있는걸 왜 몰랐을까?


'아참.. 나 잘 안 보이지.. 하하하'


약간은 묵직하고 CD플레이어같이 생긴 유축기를 가져와 살펴보았다.


일단 설명서를 읽어보니 호스를 본체에 연결하고 깔때기를 끼워서 그 깔때기를 유두에 맞추고 전원을 켜면 되는듯했다


그러나 병실에는 본체만 덩그러니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길을 헤매고 물건을 잘 찾지 못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나섰다.


엄마는 간호사실에 가서 물어보시고는 개인위생 때문에 따로 구매를 해서 쓰라는 이야기와 매점에 가면 살 수 있다는 말씀까지 듣고는 곧바로 매점으로 향하셨다.


깔때기와 호스를 구매하고 그 길로 탕비실에 가셔서 소독까지 완료하고 내 앞에 나타나셨다.


우리 엄마는 정말 슈퍼우먼 같다.


눈치도 빠르고 물건도 잘 찾는 데다 행동까지 빠르시다.



일단 유축기에 호스와 깔때기를 연결하고 일회용 모유팩을 손으로 쥐고 깔때기 밑을 받치고 있었다.


근데.. 그 모습이 너무 상상해본 적 없는 내 모습이라.. 낯설고 우습고 창피하고 참.. 그랬다.


엄마 앞에서 젖을 짜고 있는 모습이라니..


결혼 전에는 주말마다 엄마와 목욕탕도 가고 그랬는데 이건 뭔가 나만 벗고 있어서 그런가? 창피했다.


그렇다고 엄마보고 같이 짜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래서 저래서 아줌마들이 점점 얼굴이 두꺼워지는 거겠지?


'위잉~위잉~ 위잉~


기했다.


깔때기를 따라 아래로 노랗고 뽀얀 모유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유저장팩에 모인 모유는 참 따뜻했다.


한참을 짜고? 뽑고? 아니 유축을 하고 있는데 반대편 유방이 축축해져 왔다..


'잉? 머지..? 왜 여기서도 모유가 나오지?'


이제 보니 유축기의 호스 꽂는 구멍이 두 개였다.


'아.. 양쪽을...!'


아 그런데 나는 도저히 양쪽을 짜내지는 못하겠더라.. 정말 젖소가 되는 기분일 것 같았다


그냥 한쪽을 짜고 한쪽은 손수건으로 막는 방법을 택했다.


나중에는 수유패드라는 것이 있어서 생리대처럼 속옷을 버리지 않게 해 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일회용 모유저장팩은 친절하게도 날짜와 시간을 적을 수 있는 칸이 따로 있고 윗부분에는 지퍼백으로 되어 있었다.


약 70ml 정도 나왔으려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정도 되는 모유팩을 하루 2~3팩 정도 모아서 신생아실로 보냈다.


그러면 이것을 젖병에 담아서 아기에게 준다고 한다.


이 귀하디 귀한 초유를 버리지 않고 아기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다행이었다.


물론 여전히 신생아실의 수유콜이 오면 벌벌 떨며 그 망할 붙떼 젖꼭지를 들고 내려간다.


그러면 갈 때마다 아기는 초유마사지를 하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


유축기에 대한 고마움은 여기까지였다.



퇴원 후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젖소가 따로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밤만 되면 사람소리는 나지 않고 여기저기 에서 '음메~ 음메~'소리가 려오는 듯했다.


2~3시간마다 젖이 불어 가슴은 딱딱해지고 터질 것 같은 통으로 잠에서 깨면 더듬더듬 깔때기를 찾고 젖을 짜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잉~'


처음에는 캄캄한 이 밤에 이런 소리를 내면 다른 방의 젖소들에게 방해를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정도 되었지만 그 걱정도 잠시..


내 것의 소리가 끝나면 옆방.. 연달아 다른 방의 젖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위잉~ 위잉~ 위잉~'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잠도 부족했지만 젖몸살에 시달리기도 하며 조금씩 지쳐갔다.



어느 날 젖을 짜다가.. 아니 유축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양쪽을 모두 짜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유축기의 호스구멍이 두 개인 게 빨리 짜고 쉬라고 두 개였구나..!'


이쯤 되니 엄마가 예전에 그렇게도 여자가슴을 '젖'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여자의 가슴은 가슴이고, 산모의 가슴은 '젖'이 맞다싶다.


소젖.. 양젖.. 음.. 사람젖.. 씁쓸한 이유는 뭘까..?



병실에서도 그랬지만 조리원에서의 2주 동안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역국이라 하겠다.


아이를 낳아본 산모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세숫대야만 한 국그릇에 미역국을 한가득 준다.


더 놀라운 건 그걸 내가 다 먹어치운다는 것..


먹고 짜고.. 먹고 짜고.. 먹고.. 짜고..


조리를 위해 먹는 것인지.. 젖을 짜기 위해 먹는 것인지.. 내가 산모인지.. 짐승인지 모호해져 갔다.


집으로 온 뒤로도 한동안은 유축기 생활이 계속되었다.


아기가 먹는 양에 비해 젖의 양이 많다 보니  냉동실에는 모유가 쌓여만 갔다.


급기야 수제비누를 만드는 곳에 기부까지 하는 선행을 펼쳐 보였다.


분명 소젖 같고 젖소 같고 그래서 내가 짐승 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어쩄거나.. 이렇게 넘쳐나는 모유량 덕분에 아기는 배부르게 키울 수 있었다.


흠.. 분유값은 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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