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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27. 2022

우리 아빠는 '가루병'에 걸렸어요

2년마다 청소기를 바꾸는 이유

사람마다 정리와 청소의 스타일은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나는 눈 때문에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잘 찾지를 못한다

그래서 주방의 싱크대의 물건들은 내가 항상 사용하던 그 자리 그대로 놓아둔다.

화장대의 화장품은 물론이고 욕의 치약과 칫솔, 세면도구들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반면.. 남편은 제자리에 두는 법이 없다.

주방 가위를 식탁에서 쓰면 그냥 식탁에 두고 나온다.

손톱을 깎고 나면 그 손톱깎이가 어디 있는지 찾을 방법이 없다.

찾다 찾다가 어딨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쓴 적이 없다고 발뻄을 한다.

결국에 찾고 보면 변기 뒤편에 면도기와 함께 널브러져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런 남편에게 유난히 예민한 부분이 있다.


아이들이 과자를 꺼내면 남편은 청소기를 꺼내온다.

아이들이 먹고 있는 도중에도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차에서도 과자는 절대 금지사항이다.


집에 있는 어항과 거실창, 그리고 차 유리에 지문이 찍혀있는 꼴을 못 본다.


퇴근 후 손도 씻기 전에 청소기부터 돌리고 물티슈 몇 장을 꺼내 거실창과 어항을 닦기 시작한다.


가위질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아이고.. 종이 가루 좀 봐라.. 가위질 좀 그만해"


이런 아빠를 보며 아이들은 말한다.


"아빠는 가루병에 걸린 것 같아~"



혹자는 청소해주는 남편이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그 사람 입장이 되어봐야 안다.


과자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맛있게 다 먹고 나면 한 번에 치우면 되지 않는가..?


아이들이 놀다 보면 창문이나 어항을 만져서 손자국이 날 수도 있는 건데..


과자는 흘리지 않게 한입에 다 넣고 먹어라는 둥.. 유리는 손으로 절대 만지지 말라는 둥.. 바로바로 닦아주고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까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반발심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 하기 싫어진다.


어떤 날은


'웨하스라도 사서 차에서 먹어버릴까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번의 다툼과 대화 끝에 요즘엔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

조용히 혼자 치우는 모습도 보이고.. 나도 괜스레 눈치가 보여 아이들에게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곤 한다.



예전에 남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재수 씨. 이놈이랑 집에서 술을 한잔 한 적이 있는데요. 안주로 과자랑 치킨을 먹었는데 나는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근데 이놈은 손으로 과자부스러기를 슥슥 쓸어 담더니 안 되겠는지 결국 청소기를 꺼내와서 청소를 하더라고요.

하하하~~~"


...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도 남편은 남 편 데로 내가 답답할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청소기를 돌려도 놓치는 먼지와 머리카락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더 열심히 청소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우리 남편은 연애시절 정말 자상하고 꼼꼼한 남자였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런 꼼꼼함과 자상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데이트를 하다가 음식을 먹게 되면 가끔 내가 옷에 흘리거나 묻힐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남편은 물티슈나 휴지에 물을 살짝 묻혀서 내 옷을 닦아주곤 했다.


얼굴에 작은 먼지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항상 나를 살펴봐주고 뭐라도 묻은 게 있으면 뗴어주고 닦아주곤 했다.


그런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면 내가 아기가 된 것 같고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음.. 지금은 그냥 '가루병/에 걸린 40대 아저씨다.


뭐.. 남편도 내가 아기는커녕 칠칠맞은 아줌마일 테니.. 하하~



오늘 새 청소기가 도착했다.

우리 집 청소기는 2년마다 교체 중이다.

비싼 것도 고성능도 필요 없다.

어떤 것을 사더라도 너무 많이 돌려서인지 2년을 채 넘기기 어렵다.



존스홉킨스 지나영박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사랑은 그 사람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 주고 고쳐주면 좋겠다는 마음 자체가 사랑이 아니라는 말씀..


한숨 한번 쉬어주고..

나도 그렇게 내 남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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