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생활기] #4 - 마루노우치(丸ノ内)

by John


마루노우치 새디스틱(丸ノ内サディスティック)


20세기에 나온 앨범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시이나 링고의 첫 정규 앨범 '무죄 모라토리엄(無罪モラトリアム, 1999)'의 수록곡 중 하나이다. 마루노우치 새디스틱의 가사에서 묘사된 도쿄라는 도시에 대한 내용이 30대 후반인 내가 현재 이 도시를 바라보는 단상과 매우 닮아있어 도쿄와 마루노우치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한다.


도쿄,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꿈의 도시, 잠시 들른 관광객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일방적으로 짝사랑하게 되는 순간 매우 고달파지는 그런 혹독한 곳. 외국인으로서 도쿄에서 필요로 하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는 일절 기회와 자비가 없는 냉정하고 잔혹한 도시, 그중에서도 마루노우치가 도쿄에서 갖는 상징성은 지대하다.


마루노우치에는 일왕이 실제로 거주하는 황궁인 고쿄(皇居)가 위치해 있고, 잦은 지진으로 높은 건물을 지양하는 도쿄에서 높은 건물들은 전부 마루노우치에 모아놓은 듯 이곳에는 우아하고 멋진 고층빌딩이 밀집되어 있다.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되는 다수의 대기업들과 외자계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마루노우치에 터를 잡고 있는 것도 이곳의 입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와중에 일본 전국 어디로도 갈 수 있는 모든 노선의 열차와 전철이 정차하는 도쿄역(東京駅)이 있기 때문에, 서울로 비유하자면 서울역/여의도역/삼성역을 한 곳에 합쳐놓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라 생각해 본다.


5월의 마루노우치


오래 알고 지낸 동생이 나와 비슷한 목적으로 일본에 한 달 먼저 와 있기 때문에 모처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장마가 끝나고 당장 6월만 되어도 도쿄는 너무 덥고 습해져서 야외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5월의 도쿄를 최대한 즐겨보려 한다.

마루노우치에는 곳곳에 많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즐비해있는데, 지금 막 새싹과 잎들이 자라나는 시점이라 한여름보다 더욱 생기 있고 아름답게 도시를 빛내고 있었다.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는 나에게 5월의 마루노우치의 전경은 정말 인상적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긴자(銀座)


조금 걷다 보니 긴자역으로 왔다.

앞서 잠시 소개했던 마루노우치 새디스틱에는 긴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오고, 아주 어릴 당시에는 저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했었는데, 저 한 줄이 사실상 도쿄의 냉혹한 현실을 말해준다고 생각해 본다.


'最近は銀座で警官ごっこ、国境は越えても盛者必衰。'

(최근엔 긴자에서 경찰놀이, 국경은 넘어도 성자필쇠)


긴자에서 하는 경찰놀이란, 화자가 코스프레 이미지 클럽(이메쿠라)에서 경찰 제복을 입고 유사 성매매를 한다는 것을 은유한 것으로 보이며 본업만으로 먹고살기 어려워 최근에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기 시작한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경을 넘는다는 건, 해외에서 일본으로 원정 성매매를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성자필쇠'란 단어 뜻 그대로 융성한 무언가도 결국 쇠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육체가 아름다운 젊을 때는 몰라도 언제까지고 성을 팔 수는 없다는 심오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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