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칸야마(代官山)의 거리
JR을 좋아하는 나는 다이칸야마로 향할 때마다 JR 야마노테센 에비스(恵比寿) 역에서 내려 긴 언덕을 올라가는 수고를 자처한다. 어디까지가 에비스이고 어디서부터 다이칸야마인지,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다이칸야마까지 도달하는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거리의 모습들이 정갈하고 깨끗하며, 사실 에비스뿐만 아니라 시부야, 나카메구로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변을 가게 되면 겸사겸사 자주 들르는 편이다.
나는 항상 도쿄에 올 때마다 잠시라도 다이칸야마에 왔었다.
이렇게나 온갖 자극이 범람하며 도파민에 뇌가 절여져 살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다이칸야마의 절제된 색감, 정돈된 풍경, 과하지 않은 적당한 고요함이 오히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흔든다. 내게 가장 강렬하고 유효한 영감은 늘 이처럼 조용하고 단순한 공간에서 온다. 이 거리는 과하게 꾸며져 있지도, 화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지만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강렬한 ‘무언가’를 품고 있다.
돌담을 따라 흐르는 그림자들, 의도되어 미묘하게 틀어진 곡선의 지붕, 무심하게 놓인 작은 의자 하나마저도 다이칸야마에서 마주하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항상 특별히 무언가를 찾거나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 거리에서 느껴지는 그 태도와 고요한 고집스러움에 마음을 뺏긴다.
자비 없이 바쁘고 빠른 도쿄라는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나 일관되게 단정하고 조용한 기운을 유지할 수 있을까, 번잡함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길 거부하듯 거리 어디에나 정숙함이 감돌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거리 전체가 마치 한 명의 감독에게 만들어진 영화 세트장처럼 일관된 미감을 유지한다.
다이칸야마(代官山)의 상점
하지만 이곳에서 내 마음을 진짜로 사로잡는 건, 해가 저물 무렵 보이는 상점들의 모습들이다. 하늘빛이 서서히 어둡게 짙어지고, 골목마다 상점들이 하나둘씩 불을 켜기 시작하면 저마다의 빛들이 오렌지색으로 거리를 감싸기 시작한다.
그 빛들은 어둠에 반하는 단순한 조명(照明)의 역할만을 맡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의 한 씬과 같은 이 장면에서 마주하는 이들의 마음마저 따뜻하게 적셔오는 잔잔한 온기를 품으며, 무언가를 채우러 오기 위해 방문한 그들에게 차라리 더 비워내고 가라고 독려해주는 조연(助演)의 역할까지 겸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주고 혼자 걷는 시간마저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다이칸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