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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무엇을 쓸 것인가

이번 여행에는 다시 펜으로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다. 과거의 나는 무지 노트와 얇은 검은색 잉크 펜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한평생 그림을 그려왔던 터라 무엇이든 생각을 펼쳐야 하는 순간이 오면 늘 필요했던 것은 종이와 펜이었다. 줄이 쳐진 노트는 종이를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 생각의 흐름은 도무지 반듯한 선처럼 되지 않기에 어떤 방향이든 뻗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글로 표현이 되지 않으면 그림도 그려야 하니,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진 선으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다. 취향이 확고한 편이라 선호하는 펜도 정해져 있다. 바로, 스태들러 피그먼트 라이너(STADTLER pigment liner) 0.1. 혹시나 하는 마음에 0.3과 0.5도 챙기곤 하지만(무조건 홀수로!), 사실 0.1 외에 잘 쓰지 않는다. 펜이 굵어지면 굵어질수록 필체가 섬세하게 담기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는 꽤 예민한 사람이다. 뭉툭한 연필처럼 두꺼운 펜 역시 필체가 지닌 인상을 무디게 만든다. 가는 선만이 예리하게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법이다. 나는 필기구가 지닌 개성보다 쓰는 사람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스태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0.1은 제격이다. 깔끔하고 또렷하게 써지는 펜을 쥐고 있으면, 민낯의 나를 마주하기 쉬워진다. 문장도 덩달아 솔직해진다.


이 습관은 스페인에 있는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가는 여정, 순례자길을 걸으며 든 것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을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려고 했던 때였다.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었다. 대학교에서 편집디자인을 공부한 나는 디자인 일을 좋아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갈증이 났다. 타인의 글이 아닌 내가 쓴 글을 편집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 욕심에서 출발한 일이었으니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때마침 여행을 가려고 계획했던 돈이 모였을 뿐, 가서 쓰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장기 여행이었기에 제법 두꺼운 무지 노트를 장만했고, 집에 너저분하게 놓여있던 펜을 몇 자루 챙겼다.(그것이 하필 스태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0.1!) 준비는 모두 끝났다. 단출하게 꾸린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썼다. 요령이 없으니 보이는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모두 썼다. 정말 모조리 썼다. 여행 중, 값이 오십 센트도 되지 않는 와인 한 잔을 사 마시는 일이 잦았는데, 혈중 알코올 농도와 상관없이 쓰는 것을 건너뛰지 않을 정도로 매진했다. 나에게 있어 ‘쓰기’는 와인보다 중독성이 강했다.


나는 약간의(이라고 쓰고 '상당한'이라고 읽는다.) 강박이 있다. 내가 가진 수많은 강박 중에 하나는 바로 기억이 흩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쓰고 있으면 여행을 하며 든 감상을 잃을까 걱정해할 필요가 없었다. 12kg짜리 내가 진 배낭을 대신 메고 피레네 산맥을 함께 넘어준 베드로, 눈 속의 산행을 마치고 오 세브레이로에서 들었던 가이타 가예가 연주 소리, 걷기의 마지막 날 피스테라에 내리는 빗속에서 본 대서양. 그 모든 것이 눌러 적은 지면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노트를 두 손으로 모아 가슴으로 당겨 안으면,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더는 잃지 않게 된다는 안도가 들었다. 이젠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기록'으로 남아 있어 보고 싶을 때마다 펼쳐보면 나는 그 시간으로 언제 어디서나 돌아갈 수 있었다. 마침내, 기억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쓰기는 또 다른 강박을 낳았다. 요령 없이 쓰기 시작한 일은 모조리 쓰는 것 외에 다른 쓰는 법을 찾지 못했다. 한술 더 떠서 나는 펜으로 쓰지 않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디지털 기기를 들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키보드로 두드리면서 쓰는 것은 여러 제약을 뛰어넘게 해 주었다. 적절한 값만 치르면 쓰는데 필요한 용량도 무한히 확장할 수 있고, 다양한 형식으로 기록이 가능했다. 긁어모으는 성격과 맞아떨어지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쓴 글을 모아놓고 보니 어딘가 모르게 건조했다. 스스로 자문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왜 쓰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답을 했다. 생생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남기고 싶어서. 과거가 될 이야기이지만, 미래에도 유효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웃고, 울고, 아프고, 걱정하고, 불안하고, 형편없고, 좋아하고, 감동하고, 서운하고, 서럽고, 화나고, 설레고, 들뜨던 그 시절의 나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나를 알 수 있으니까. 현재를 이해하는데 과거의 기억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나아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을 미래의 내가 당시의 기록을 통해 조금이나마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맥락을 움켜쥐고 나를 돌아보겠다는 의지가 쓰기의 이유로 작용한 것이라면, 모조리 쓰기보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심에 두고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아졌다.


나는 스태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0.1의 예리함을 기억해 냈다. 쓰는 이의 필체를 예리하게 담는 펜은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도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사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꽤나 많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책상처럼 넓고 평평한 곳에서 흔들리지 않게 노트를 둘 곳이 필요하다. 노트와 펜은 소모품이기 때문에 동이 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오래 쓰다 보면 손이 아프다. 게다가 나는 펜을 올바르게 쥐지 않는다. 제대로 쥐면 덜 아프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도 나름의 개성이라고 굳이 고쳐 쥐지 않는 고집까지 더해진 결과다. 하여튼, 말하자면 불편함이 많은 것이 종이에 펜으로 쓰기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불편함이 필요하다. 불편함은 꽤 많은 것을 덜어내도록 하니까. 손이 저리고 종이가 모자라고 펜이 닳기 전에 그리고 카페 문이 닫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책상 앞을 떠나야 하기 전까지 가장 필요한 한 줄을 쓰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그 상황이 여행이라면? 쓰지 않고 남은 시간을 충분히 여행하도록 쓸 수 있게 한다. 즉, 펜으로 쓰기는 덜어 내며 쓰는 법을 터득하게 해 줌과 동시에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셈이다.


그런 이유로 펜을 다시 쥐게 되었다. 이것만 챙기면 여행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묘한 쾌감을 느끼던 때처럼 노트와 펜을 챙겨 그리스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는 필요한 것이 더 있었다. 나를 그리스로 보내게 한 첫 번째 이유, 니코스 카잔차키스이다. 기내에서 이윤기 역자의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의 해설과 옮긴이의 말을 읽었다. 몇 해 전,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소설이 나에게 일러준 것은 분명 자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을 향한 카잔차키스의 사랑 그리고 카잔차키스를 향한 이윤기의 사랑이 지면 위에 묻어난 것이었다. 잠시만, 내가 품었던 감정도 사랑이었을까? 카잔차키스를 떠올리면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늘 존재하는 기분이었는데.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던 감정의 실마리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이제,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가벼운 여행을 위해 구매한 『그리스인 조르바』(더클래식) 미니 북을 펼쳤다.


햇빛을 쫓아서 서쪽을 향해 비행했다. 문득 무언가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에 동쪽을 돌아봤다. 하늘에 반이 채 먹히지 않는 달이 시야에 들어왔다. 달을 아끼는 마음을 두고 올리가 없는데, 어째서 달은 나를 부른 것일까? 올해부터 만 나이가 표준나이로 도입되는 까닭에 며칠 후 서른넷의 생일을 다시 맞게 되었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로 떠나는 길이었다. 게다가 보름달이 뜬 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서른넷의 생일에는 초승달이 떴다. 그때 나는 스스로 지닌 결핍을 가리지 못한 채 그대로 지켜보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온전히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보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났으니까. 울기만 하고 나아지는 방법을 모르는 나는 그런 이유로 보름달을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보름달의 완벽한 원을 보고 있으면 위안이 되었다. 삼십일이 채 되지 않는 주기로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달은 나에게 머지않아 다시 채울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언젠가부터 크고 밝은 보름달을 그리스의 수니온 곶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에서 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19년 만에 찾아온 내 생일에 뜨는 보름달을 보기에 그 장소만큼 적절한 곳은 없다고. 이것이 그리스 여행의 두 번째 이유다. 


나를 부른 달


날 불러 세운 달이 말했다. 보름달은 그곳에만 뜨는 것이 아니라고. '자유'의 실체를 확인하려 떠나는 내게 일상을 잊지 말라고 달은 당부했다. 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렴. 그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자유를 확인하고 돌아오려는 것이니. 그렇게 동쪽에 뜬 달에게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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