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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그리스의 소리

공간을 메운 모든 것들이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마치 춤사위 같은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가 선율을 만들었고, 바람결에 서로 스치는 풀잎 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가 그 음악을 조미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은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눈이 자연스레 감겼고 나는 에게해를 유영했다. 파도가 포말을 만들어내며 나를 휩쓸고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끝에 그리스를 닮은 파랑에 물든 나 자신을 발견했다. 파랑의 나는 기꺼이 다시 그리스의 바다에 몸을 내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알았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함이었구나. 여행에는 음악이 좀처럼 빠질 수 없는데도, 아무런 음악이 듣고 싶지 않아 어리둥절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래도 음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도무지 듣고 싶은 음악이 떠오르지 않아 스마트폰 화면에서 손가락은 갈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평소 듣던 음악을 듣기로 했다. 그러나, 익숙하게 듣던 노래를 몇 곡에 금세 싫증이 나 바로 꺼버렸다. 전혀 흥이 나지 않았기에. 참, 그 노래가 있었지. 여행을 떠나는 날, 시리가 추천해 준 노래를 기억해 냈다. Σtella의 〈Titanic〉. 가끔 이렇게 시리는 무서운 짓을 한다. 내가 아테네를 가는 줄 어떻게 알고 이 노래를 추천해 준단 말인가! 다름 아닌, 아테네 출신 아티스트의 노래를! 그래, 누가 봐도 앨범 커버 이미지와 아티스트 이름이 내가 바로 그리스요! 하는 이 노래를 그리스에 도착하면 반드시 들어보리라. 하지만, 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바로 재생할 수 있음에도 이것마저 영 내키지가 않았다. 결국 그 노래를 들어도 보지 않고 양쪽 귀에 꽂혀 있던 무선 이어폰을 빼 버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정처 없이 아테네를 누비고 다녔던 날이었다. 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크로폴리스의 헤로메스 아티쿠스 음악당에서 열리는 음악회 포스터였다. 헤로메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기원전 161년에 건설되어 현재까지 음악당으로서 역할을 이어오고 있는 역사를 지녔다. 머릿속에 온통 조르바와 보름달 밖에 없던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우연히 마주친 포스터에 연주회 장소가 헤로메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아테네를 뜨기 전 공연을 볼 수 있는 스케줄이 있었고 당일 예매임에도 현장에서 발권이 가능한 표가 있었다.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창구 직원으로부터 표를 건네받았다.


해가 지고 공연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음악당에 들어섰다. 시야가 좋은 좌석은 모두 매진이었던 터라 가장자리로 밀려나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도 마음에 쏙 드는 자리였다. 마중 나온 달을 보기 좋은 좌석이기 때문이었다. 달은 점차 살을 찌워 보름달이 되기 단 하루만 남겨둔 터였다. 음력 14일에 뜨는 달은 해가 지기 전 동쪽에서 뜨고 밤이 깊어질수록 서쪽으로 기운다. 남동쪽을 바라보며 앉는 좌석은 이 시기의 달을 보기 최적의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다. 


헤로메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라는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무대를 비추는 빛 외에 불필요한 빛은 없었기에 밤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기분이었다. 빛이라곤 그저 달만 있을 뿐이었다. 밤이 밤다워질 수 있도록 돕는 달 말이다. 달이 지켜준 어둠 안에서 음악을 듣는 일은 특별했다. 차츰 시야가 좁아지고 이 세계에 달과 나뿐이라는 생각에 들었다. 그때, 고요한 적막을 깨고 소리의 존재감이 드러났다. 누구나 한 번쯤, 노래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밤에 음악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을 메우던 어둠이 밀려나며 소리로 채워졌고 나는 온 감각을 동원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좁아졌던 공간도 점차 증폭됐다. 마침내, 소리와 나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소리가 나이며, 내가 소리가 되는 순간. 이것이 바로 듣는다는 감각이 아닐까?


그리스에서 음악이 듣고 싶지 않았던 까닭은 이렇게 해소되었다. 무엇을 들을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들을 것인가, 듣는 태도를 짚어볼 때였던 것이다. 이제는 음악이 아니라 어떤 소리든 그렇게 듣고 싶어졌다. 즉, 이어폰을 끼고 어떤 음악을 들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들을 소리가 충분히 많으니까.

 

헤로메스 아티쿠스 음악당의 현대 클래식 공연

 

마침내, 넘치는 환호성 속에서 에우테르페는 연주를 마쳤다. 달빛의 보살핌을 받으며 숙소로 돌아오니 나는 서른넷이 되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충만하게 소리를 소리답게 들을 수 있는 서른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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