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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두 번째 서른넷

"데니스, 일 박 더 연장할게요."


이제 막 수니온에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한 참이었다. 호스트 데니스가 숙소 근처에 수영할 수 있는 해변을 일러줘 보러 갔다가 첫눈에 반해버렸다. 아, 일 박으로는 부족해! 포세이돈 신전이 보이는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숙박을 연장했다.


생일날 포세이돈 신전의 보름달을 보러 수니온까지 왔다는 내 말에 데니스는 선물을 주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우조였다. 얼음을 꺼내온 그는 우조는 차게 마셔야 한다고 했다. 우조에 얼음을 넣으니 맑고 투명한 술이 코코넛 밀크처럼 탁하게 변했다. 저녁 식사에 화이트 와인으로 자축을 했던 터라 일일 알코올 섭취를 이미 초과했지만, 생일이니 기분 내는 것에 인색해하지 않기로 했다. 연장된 숙박비를 추가로 결제하려고 그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데니스는 백오십 유로를 불렀다. 내가 알고 있는 숙박비보다 자그마치 삼십 유로가 빠진 금액이었다. 생일 디스카운트가 적용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것이 중요한 여행자는 이유도 묻지 않고 땡큐를 반복해 답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처음 개시하는 새빨간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나섰다. 햇빛이 길게 늘어지는 중이었지만, 낮동안 바다가 데워진 덕분에 수영하기 좋았다. 해가 지고도 한참을 더 놀 생각이었으니 문제 될 것은 더욱이 없었다. 해변에서 어느 중년의 그리스인 커플을 만났다. 포세이돈 신전을 가리키며 생일에 수니온에서 저 신전을 보러 왔다는 말로 그들이 묻지도 않은 나의 생일을 알렸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질문이 이어졌다. 곧 일몰 시간인데 왜 신전에 가지 않았냐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니온의 포세이돈 신전은 일몰 명소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일몰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에요. 달을 보러 왔어요."

"달?"

"네, 오늘 보름달이 뜨거든요."

"전혀 몰랐어요."

"오늘 뜨는 보름달은 19년 만에 제 생일에 뜨는 보름달이에요. 여기서 수영을 하다가 저 포세이돈 신전과 함께 보름달을 보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이게 저에게 줄 생일 선물이에요."


이따가 뜰 보름달을 기대하겠다 인사하며 사라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끝을 맺지 못한 몇 가지의 문장을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름다운 한 쌍이었다.


몽돌해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모가 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돌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표면이 매끄러운 돌을 만지작 거리며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을 짐작해 봤다. 아기가 먹기 좋게 떼어 만들어놓은 떡 같아 보이기도 했다가, 우주 멀리 떠 있는 행성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볼까 시도했다가 강박이 돋는 기분이 들어 멈췄다. 대신 마음에 드는 돌을 집어 챙겨 온 주머니에 담았다. 주머니에 돌을 채우니 세세히 이름 붙이지 못한 기분 좋은 감정도 덩달아 채워지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 파도치는 바다로 나가 볼까. 바다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지만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기다리던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달이 나왔네요."


H의 담백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뒤를 돌아봤다. 일 년 전, 첫 번째 서른넷을 맞이했던 날에 나는 제주도의 금능해변에 있었다. 예리한 곡선을 그리며 빛나는 초승달도 거기 있었다. 배경으로 깔린 핑크빛 하늘. 그 색감을 반영하며 일렁이는 바다 위의 윤슬. 기분 나쁘지 않은 온도의 바닷바람에 살랑이는 짧은 내 머리카락. 그리고 처음 개시한 붉은 꽃 패턴 원피스의 끝자락이 바닷물에 잠겨 소금기에 끈적여도 좋을 만큼 낭만적인 저녁이었다. 그러나, 낭만은 으레 그렇듯 현실로 옮겨지며 부족한 나 자신을 확인하는 계기로 탈바꿈되었다.


틈, 간극, 비어진, 채워지지 않는, 균열, 분열, 빠진, 감소된, 결핍, 침식, 부재, 모자람, 텅 빈, 공제, 공백. 나는 강박적으로 불완전한 단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어떤 단어도 공허한 내 기분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모으면 모을수록 공허하고 또 공허했다. 어떻게 하면 저 초승달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보름 후 찾아오는 완벽한 원 앞에서 나의 한계를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이 불안을 잠식시킨 것은 다름 아닌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였다. 『딕테』는 의도적으로 비어진 텍스트이자 이미지이다. 온점과 같은 문장부호가 사라지는 것은 기본이고, 의미마저 탈락시킨다. 이 비움은 이미지에서 선명히 드러나는데 그것이 바로 하얀색이다. 영상 작가로도 알려진 그가 해석한 하얀색은 채우고자 하는 상이 반영되기 전의 빈 스크린을 의미한다. 영사기를 통해 필름이 스크린에 비칠 때, 채워지지 않은 여백은 하얗게 남기 마련이다. 그 어느 것도 투영하지 않은 빈 필름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스크린이지만, 사실 그 어떤 것이라도 담을 수 있는 무한함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비움을 무한함으로 연결시켰다.


비어진 그의 텍스트를 다시 읽어봤다. 비움을 불완전하게 읽기보다 내가 채워볼 수 있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하며 읽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제야 그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이 비움은 읽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구나. 바로, 지금 이 책을 읽는 '나'를 위해서. 그러니, 반드시 비워져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비움이 부족함이 아닌 채움의 무한한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아가 하얀 스크린은 상을 담기 위해 '아직' 비워진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하기도 했다. 검은색 즉, 채워진 상태가 아닌 하얀색이 상징하는 비워진 상태가 기본값인 셈이다. 나 역시 비워져 있는 것, 채워지지 않음이 당연했다.


틈, 간극, 비어진, 채워지지 않는, 균열, 분열, 빠진, 감소된, 결핍, 침식, 부재, 모자람, 텅 빈, 공제, 공백. 나는 이 불완전한 단어들 앞에서 더는 떨지 않게 되었다. 그저, 실체 없는 군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하얗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봤다. 여태 저 달을 보며 나는 한 치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완벽함에 압도된 채 무력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다시 맞은 서른넷에 보는 보름달은? 어딘가 모르게 다정했다. 보름달의 저 하얀색은 풍요롭게 자리 잡은 여백이다. 풍요와 여백. 이 두 단어가 공존할 수 있다니. 보름달이 더욱 좋아졌다.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무한의 공간이 된 보름달. 오늘은 무엇을 채워볼까. 저게 좋겠다. 나는 달빛에 그림자 진 올리브 잎과 보름달을 함께 사진으로 남겼다. 하얀 스크린에 담고자 하는 대상을 두어 이미지를 만들듯이. 이것을 가장 그리스다운 보름달로 기억하리라. 나는 그 보름달을 밤새 바라봤다.


올리브 잎을 품은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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