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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Aug 29. 2020

자연을 향유하기 위한 첫걸음

제로 웨이스트 뉴비의 달라진 일상

젬마, 내가 몇 달 전 이런 내용으로 인스타그램에 글을 게시한 적이 있었어.


제로 웨이스트를 결심한 n개월 차 뉴비의 소비 목록

과일이나 채소를 담을 수 있는 메쉬 프로듀스 백
아침 빵을 사는 내게 필요한 바게트 주머니
소창 행주 2개
휴대용 물티슈를 대신할 와입스
살림이란 것을 드디어 해보겠다고 산 스테인리스 밀폐용기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시장 들려서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아 김치를 사 와야겠다


어느 한 제로 웨이스트 가게에서 필요한 상품들을 구매하고 남긴 인증 게시글이었지. 먼저 가게의 웹페이지를 살펴보며 구매 목록을 작성했어. 그리고 그곳에 방문해 하나하나 따져가며 사온 기억이 떠올라. 최근 들어 나는 제로 플라스틱을 실천할 수 있으면 그렇게 혹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레스 플라스틱이나 유기농 제품 등을 소비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

지난해 제주에 살면서 있었던 일이야. 나는 친구와 한림의 올레길을 걷고 있었어. 그날도 바다 건너 비양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했던 날이었지. 친구와 저지오름에서 한림 선인장 군락지를 걷던 와중에 발견한 쓰레기 산은 참담했어. 그 광경을 보던 친구는 그렇게 말했지. "제주에서 좋은 것만 보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제주의 파도와 밤하늘 그리고 꽃

그날이 계기였을까? 미디어에서 말하던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나는 점차 깨닫게 되었어. 제주 생활을 하면서 비자림로에 대한 논쟁이 오가는 현장을 직접 보기도 했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주에서 느끼고 있는 이 소소한 행복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파도를 타며 바다의 숨을 느끼는 삶도, 길에 피어있는 들꽃의 향을 맡으며 오름을 오르던 일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의 이름을 읽으며 그날의 감상을 늘어놓던 날도 머지않아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나는 일상 속에서 하나 둘 무언가를 행할 때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사실 아직도 쉽지 않지. 습관이 들지 않아 텀블러는 놓고 다니는 것이 일수며, 귀찮음이 느껴지면 일회용 물티슈에 손이 가기도 해. 그리고 성분을 다 따져가며 무언가를 사기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면 결국 최저가 쇼핑을 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하지. 그래도 있잖아 '시작'이라는 것을 하게 되니까 스스로 검열하고 내가 가진 가치관에 빗대어 보며 어느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어. 

젬마, 향유라는 것을 아니? 향유는 소유도 아니고 공유도 아니지. 향유는 그 누구의 소유도 없는 거야. 그렇기에 내가 누린 이 것을 다음 사람에게도 온전히 전해준다는 가치가 깔려있단다. 나는 내가 소유하고 무언가를 누군가와 공유하기보다 내가 느꼈던 자연에서의 행복감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어. 그런 향유의 개념으로 작지만 소소한 에코슈머로서 첫걸음을 내디뎌볼까 해. 

이제는 구매하기 전에 불필요한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소비에서도 죄책감을 느끼고는 해. 그 죄책감이 솔직히 쉬운 감정은 아니지만, 내가 그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 이기라는 것에 감사하기도 해. 그렇지 않았던 나의 과거를 부끄럽게 까지 여기면서 말이야. 

오늘은 직접 기른 바질을 가지고 유기농 파스타 면에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해 먹을까 해. 네가 서울을 올 일이 생긴다면 너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음식이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서로 못다 한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웠던 우리의 이야기도 하자구나. 네가 그 음식을 꼭 맛있어했으면 좋겠다. 그럼 곧 보자 젬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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